I LOVE SCHOOL
‘모교사랑’이라는 회사명을 영문으로 바꿔 ‘학교를 사랑한다’는 뜻으로 만들었다. 사이트 이름이 유명해지자 후에 새로운 회사 이름이 되었다.
미니홈피, 블로그, 트위터로 이어져오는 온라인 인맥 사이트를 찾는 사람의 심리적인 고향은 아이러브스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온라인 만남은 물론, 오프라인 만남으로까지 이어지며 동창회 신드롬을 낳은 아이러브스쿨. 짧은 시간에 많은 회원을 모으며 화제의 학교가 되었지만 인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동창회 중
오랜 친구를 만나보고 싶은 마음은 다 똑같다. <TV는 사랑을 싣고>가 오랫동안 사랑 받았던 이유도 전국곳곳을 뒤져 연락 끊긴 인연을 찾아줬기 때문이다.
TV의 감동을 온라인으로 옮겨온 사람이 아이러브스쿨 창업자 김영삼이다. 그는 카이스트 박사 과정 중에 친구들과 자본금 5000만 원을 모아 1999년 9월 ‘모교사랑’을 설립했다. 방송처럼 따로 신청할 필요 없이 사이트에 가입해 친구를 찾는 서비스였다. 소문 듣고 몰려온 ‘학생’들 덕에 아이러브스쿨은 별다른 광고 없이 9개월 만에 회원 300만 명을 모으는 놀라운 저력을 보여줬다.
분위기에 맞춰 등교하기, 하교하기, 가정통신문 등 신선한 웹카피로 눈길을 끌었고, 오프라인 만남이 언론을 통해 자주 방송되며 기업 가치도 점점 높아졌다. 발전 가능성은 높고 회사 규모는 작아 자연스럽게 눈독 들이는 기업이 많아졌다. 김영삼 대표도 서버 증축과 서비스를 더 발전시키려면 좋은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당시 가장 구체적으로 이야기가 오고 간 곳은 야후!코리아다.
야후!코리아는 포털 서비스로 탄탄한 위치였지만 커뮤니티 서비스가 부족해 합병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500억 원이라는 인수 금액, 야후!코리아가 커뮤니티 보강을 위해 연동 서비스를 운영한다는 등의 관련 보도자료가 나오자 두 회사의 결합이 거의 성사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계약을 앞두고 아이러브스쿨 주주회사였던 금양이 마음을 바꾸면서 인수는 무산되었다.
금양의 정현철 대표는 매달 회원이 늘어나는 사이트를 보며, 좀 더 있다가 팔면 더 큰 금액으로 팔 수 있을 거라는 전망에 솔깃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직접적인 경영에 참여하면서 이익도 얻고 더 키울 생각이었다. 실제로 야후!코리아와 합병이 무산되고 난 뒤 금양은 아이러브스쿨 지분 16%를 더 사들여 51%를 확보, 아이러브스쿨을 계열사로 편입시켰다. 이런저런 불화 속에 2001년 창업멤버들이 회사를 떠났고, 경영고문으로 물러앉았던 창업자 김영삼 대표도 사임의사를 밝혔다.
2000년대 초반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아이러브스쿨. 12년이 지난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지만 회원들은 간데없다.
“야후!코리아와 합병 무산이 가장 아쉬워”
-현명호 아이러브스쿨 3대 대표
Q. 아이러브스쿨 재임 기간과 경영 동기는?
A. 서울이동통신 신규 사업 총괄로 재직 중 우리 회사가 아이러브스쿨의 대주주가 되면서 사업권을 넘겨받았다. 처음에는 자회사 대표(김상민 전 대표) 체제를 유지할 계획이었으나 경영권논란이 있을 때라 직접 대표를 맡게 되었다. 2004년 서울이동통신이 다른 곳에 매각되면서 자연스럽게 물러났다.
Q. 창업자가 법정소송을 거는 등 경영권 다툼으로 논란이 많았다
A. 서울이동통신이 아이러브스쿨을 인수할 당시 경영권 분쟁이 기사화되었다. 경영권을 넘겨받는 과정에서 1대 주주였던 금양의 대표가 금양측 등기 임원들의 사임서를 전해주기한 날 외국으로 도피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기존 금양측 등기임원들과 창업자들이 이사 사임서를 제출하지 않고 주주 변경에 반대했고,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아이러브스쿨의 이미지를 더욱 추락시켰다고 생각한다.
Q. 2001년 아이러브스쿨 상황은 어땠나?
A. 사태를 정리하고 대표로 취임한 후 회사을 살펴보니 사이트 자체는 훌륭하지만 회사로는 큰 문제가 있었다. 방문자와 접속자는 많은데 수익은 없었다. 2001년까지 회사는 적자 상태였다. 자금 상태도 좋지 못했다. 광고만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서 부득이하게 신용카드와 보험 같은 수익사업을 진행했다.
Q. 가장 아쉬운 점이라면?
A. (사이트는 내리막 길을 걷고 있었지만)당시에도 아이러브스쿨 브랜드 가치는 여전했다. 네이버나 드림위즈 같은 힘 있는 기업들로부터 인수 합병제의가 여럿 있었다. 찬성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때 이루어졌다면 아이러브스쿨은 또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 개인적으론 최초 이야기 되었던 야후!코리아와 진행하던 인수합병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이 가장 아쉽다.
Q. 지금 아이러브스쿨을 보면?
A. 1999년 설립 당시 아이러브스쿨과 싸이월드는 같이 출발했지만 처음에는 아이러브스쿨이 나중에는 싸이월드가 더 주목을 받았다. SK가 인수한 뒤에 크게 성장했다는 사실은 그 만큼 많은 투자를 받아 변화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다른 커뮤니티 서비스 기업도 새로운 서비스를 찾지 못하고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아이러브스쿨은 인맥 사이트인 만큼 이용자의 실망이 더 큰 것 같다.
2001년 11월 금양으로부터 아이러브스쿨의 지분을 사들인 서울이동통신은 임시주주총회를 통해 아이러브스쿨 김상민 대표이사 등 경영진 3명을 해임하고, 현명호 서울이동통신 상무를 신임 대표로 위임했다. 2년 만에 경영권 교체가 3번이나 이루어진 셈이다. 2001년 당시 개발팀에 있던 서영수 팀장은 ‘아이러브스쿨은 왜 잊혔는가’라는 글을 통해 경영진의 잦은 교체와 불화가 아이러브스쿨의 추락 원인이었다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인연찾기의 양면
내부 사정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데 서비스가 제대로 운영될 리가 없었다. 방문자 수와 페이지뷰 순위가 계속 낮아졌다. 게다가 좋은 인연을 찾아 감사하다는 훈훈한 이야기보다 불륜과 학연을 이용한 사기사건 등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많은 회원들이 빠져나갔다. 새로운 수익사업을 찾는 데도 실패했다. 회원들이 동창을 찾고 모임을 만들면 아이러브스쿨의 역할은 그걸로 끝이었다. 회원들이 아이러브스쿨을 다시 찾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새로운 사업이나 서비스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아이러브스쿨이 방향을 잃기 시작하자 후발 주자인 ‘다모임’이 서비스에 변화를 주면서 2002년부터는 아이러브스쿨을 추월했다. 이런 상황에 현명호 대표가 구원투수로 등장해 ‘회사 정상화’에 힘을 기울였다. 운영을 맡은 첫해에 수익을 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이는 현 대표도 예상한 부분이었다. 동창이라는 특성이 오랜만에 만나면 반갑지만 자주 만나면 즐겁지 않은 일이 생기듯 아이러브스쿨도 변화가 필요했다. 사진, 동영상, 기타 개인자료 등 개인화 서비스를 강화하고 불륜이나 사기 등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떨어진 기업 이미지를 다시 높이기 위한 변화에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2002년 7월에는 배움닷컴과 서비스 제휴를 맺고 교육 사업을 이어갔지만 별 다른 효과를 얻지 못했다. 자본도 부족한데다가 새로운 사업 동력을 잃은 아이러브스쿨은 백약이 무효한 중병 환자였다. 현명호 대표 재임기간 3년 간 아이러브스쿨의 회생을 위해 노력하다가 2004년 대주주가 교체되면서 자연스럽게 물러났다.
블로그와 라운지의 충성 회원만이 아이러브스쿨을 지키고 있다.
아이러브스쿨 12년사
1999년
9월 아이러브스쿨(www.iloveschool.co.kr) 설립
2000년
1월 모교사랑 1차 장학금 전달
7월 아이러브스쿨로 사명 변경
11월 회원 700만 명 돌파
9월 야후!코리아와 인수협상 결렬
12월 삼성경제연구소 ‘올해의 히트상품’으로 선정
2001년
5월 선생님 커뮤니티 서비스
6월 회원 900만 명 돌파
2002년
2월 회원 1000만 명 돌파
4월 회원 에피소드 모음집
‘아이러브스쿨’ 발행
2003년
8월 커뮤니티별로 URL 제공
10월 알럽블로그 서비스 오픈
2004년
6월 알럽 장학금 서비스 오픈/사이트 개편
9월 게임/엔터테인먼트 알럽 오픈
2005년
9월 아이엘에스커뮤니케이션으로 변경
2006년
3월 마이블로그와 라운지 서비스 개편
2009년
3월 펜레버레토리 합병
6월 월드 IT쇼 참가 전자칠판과 전자펜 발표
2010년
3월 개인정보 유출 사건
학생을 위한 교육 사업에 눈 돌리다
2000년대 중반을 넘어가도록 아이러브스쿨은 기존 서비스의 유지와 보수에만 힘쓰고 있었다. 경쟁 사이트였던 ‘다모임’이 개인 홈페이지와 동영상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었지만 아이러브스쿨은 새로운 투자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2006년까지는 사이트라도 조금씩 개편되었는데 이후로는 그나마도 끊어졌다. 그렇게 아이러브스쿨은 빛바랜 흑백졸업사진처럼 회원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져갔다.
2004년부터 아이러브스쿨을 이끈 이승호 대표는 사이트 살리기보다 새로운 사업에 관심을 보였다. 이지시스템을 함께 운영하고 있던 이승호 대표는 2006년 9월 종이에 쓰면 PC가 알아채는 ‘유플러스펜’을 개발 홍보에 주력했다. 당시 기사에는 아이러브스쿨 기사도 빠지지 않았다. 관련 인터뷰에서 ‘아이러브스쿨’과 연계해 마케팅을 펼치겠다는 말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아이러브스쿨은 2009년 6월에 월드 IT쇼에서 다시 한 번 기사화되었다. 하지만 기자들이 아이러브스쿨에 관한 질문을 하자 “비록 아이러브스쿨은 잊혔지만 브랜드 파워는 여전히 강하다”면서 “동창회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교육용 전자 장비 쪽까지 사업영역을 확대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아이러브스쿨을 살리는 것보다 전자장비 사업에 더 열중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게 다른 사업에 몰두하며 조용히 지내던 중, 지난 3월 개인정보유출이라는 좋지 않은 소식으로 오랜만에 소식을 알렸다. 회원들이 피해 상황을 확인하려고 몰리면서 잠깐 북새통을 이루기도 했지만, 지금은 블로그와 라운지 충성 회원이 아이러브스쿨을 지킬 뿐이다.
다모임
아이러브스쿨의 후발주자로 출발한 동창회 사이트다. 역시 초등학교부터 대학생까지 학연을 이어주는 서비스가 매우 비슷했다. 경영권 문제로 서비스 업데이트가 더뎠던 아이러브스쿨을 곧 추격하고 2000년 중반 동창회 열풍을 이어갔다. 동창회의 인기가 시들해지자 미니홈피와 동영상 서비스를 강화하면서 2006년 말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SM에 인수되었고, 12월 다시 소리바다로 소유권이 넘어가면서 다모임이란 이름도 완전히 사라졌다.
기자의 말
아이러브스쿨은 초고속으로 인기를 얻고, 그보다 빠른 속도로 주저앉았다.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고, 경영권 분쟁으로 후발주자에게 추월당해 주저앉기까지 채 3년이 걸리지 않았다. 아이러브스쿨의 추억은 다음 카페와 싸이월드, 블로그 등 온라인 인맥 사이트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토양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의 추억으로 잇속만 챙기려했던 경영진의 어리석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동창은 오랜만에 만났을 때 반가울 뿐, 그 감동이 만날 때마다 지속되진 않듯이 우리가 처음 아이러브스쿨을 만났을 때, 느낀 반가움과 설렘도 잠깐 뿐이다. 다시 마음을 두근거리게 할 서비스를 내놓지 못한 아이러브스쿨도 이제 많은 동창생을 배출한 하나의 추억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