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몰입 게이머 2천명 5년간 추적 관찰... 5년 후 과몰입 증상 이용자는 1% 불과
[smartPC사랑= 나스]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란 무엇인가?
2019년 5월 24일, 세계보건기구(WHO) 총회 B위원회는 만장일치로 게임이용장애를 포함한 제11차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The International Statistic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and Related Health Problems, 이하 ICD)을 통과시켰다.
ICD는 사람의 다양한 질병 및 사망 원인을 표준적으로 분류하는 규정이다. 그러나, ICD 자체는 권고사항일 뿐이며, 각국은 이를 바탕으로 ICD를 각국에 맞는 질병코드를 개발하여 사용한다.
우리나라는 ICD 분류를 바탕으로 자주 발생하는 질병을 세분화하고, 한의 분류를 추가하여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이하 KCD)를 작성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KCD는 국내에서 의무기록자료 작성, 공중 보건, 건강보험 등에 널리 활용되고 있다.
KCD는 2010년 이후 5년마다 개정되며, 2020년에 실시된 8차 개정에서는 시간적 제약으로 인해 ICD-11의 변경 사항이 반영되지 않았다. ICD-11은 내년인 2025년에 예정된 KDC 9차 개정에서 포함될 예정으로, 이와 관련된 찬반 논란이 뜨겁다.
'게임이용장애'가 질병으로 분류된다면?
하루 종일 스마트폰으로 SNS를 하거나, 다른 일을 제치고 영상물을 시청하거나, 한 달에 1,000KM 이상 달리는 마라톤에 몰두하는 사람, 약속을 잊고 책을 읽는 사람 등 사실 문화나 문화상품에 대한 과몰입은 다양한 분야에 존재한다. 그러나 현재는 특정 미디어나 콘텐츠에 과몰입하더라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가 아니면 이를 질병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KCD에서 이를 질병으로 분류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임이용장애’가 내년 KCD에 등재되면, 미디어와 문화 상품 과몰입중 유일하게 ‘게임이용장애’만이 질병이 되는 것이다. 일정한 ‘진단 기준’을 거쳐 ‘게임이용장애’ 로 판단되면 다양한 방식으로 치료하게 된다.
다만 어떻게 ‘게임이용장애’를 진단할 것인가는 문제이다. ICD-11은 다음과 같이 게임이용장애를 정의하고 있다.
코드 '6C51' : 게임 이용 장애
○ 게임 이용 장애는 온라인(인터넷을 통한) 또는 오프라인의 연속적이거나 반복적인 게임 행동 패턴(디지털 및 비디오 게임)으로 특징지어지며,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1. 게임 통제 기능 저하(예: 시작, 빈도, 강도, 지속 시간, 종료, 상황)
2. 게임이 다른 생활(삶)의 흥미와 일상 활동보다 게임에 우선시함.
3. 악영향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게임 이용을 지속하거나 확장함. 행동 패턴은 개인, 가족, 사회, 교육, 직업 또는 기타 중요한 기능 영역에서 심각한 장애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심각성을 가진다.
○ 게임 이용 행위의 패턴은 연속적이거나 단편적이며 반복적일 수 있다. 게임 이용의 행위와 기타 기능들은 일반적으로 진단을 할당하기 위해 최소 12개월에 걸쳐 명백하다. 분명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진단 요건이 충족되고 증상이 심할 경우 필요한 지속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이 반드시 게임에만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위에서 언급한 '게임이용장애' 정의를 SNS 이용장애, 인터넷 이용장애, 스포츠 이용장애 등으로 바꾸더라도 모두 동일한 진단 기준이 적용될 수 있다. 앞서 설명한 사례와 같이 SNS, 인터넷, 스포츠는 ‘중독’이 의심되더라도 질병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더 나아가 ‘게임’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가 아예 없다. 예를 들어, 동료와 오프라인에서 즐기는 바둑, 체스와 같은 보드게임과 같은 게임이 게임이용장애에 포함되는 것인지, 해당 게임을 온라인에서 즐길 때에는 게임이용장애에 해당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WHO는 보드게임과 같은 오프라인 게임은 게임이용장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이것은 오히려 디지털에 대해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게임 이용 장애의 영향 : 게이머와 게임 업계의 우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준은 게이머와 게임업계에는 큰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 우선, 진단 기준도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게임을 하는 사람은 잠재적 정신병자로 낙인찍힐 우려가 있다. 이는 게이머들이 게임 질병 코드화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다.
건국대학교 정의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과몰입 게이머 2,000명을 5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5년 후에도 과몰입 증상을 가진 이용자는 1%에 불과했으며, 그 1%도 자연치료로 유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는 게임이라는 콘텐츠가 다른 콘텐츠에 비해 더 중독성이 강하다고 볼 근거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수준이 아니라 ‘과몰입’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대부분 ‘게임’ 자체가 문제가 아닌 개인의 다른 특성(우울증 등), 사회경제적 특성(빈곤, 실업) 등이 문제가 되어 게임에 몰입하는 경우가 다수이다. 이러한 상황이 나아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게임이용장에에서도 벗어나게 된다. 따라서 그 자체가 독립적인 질병으로의 지위를 갖기는 어렵다.
게임 과몰입 원인은 사회경제적 환경의 영향
게임에 과몰입하는 이용자를 교정하는 데는 스트레스 관리나 사회경제적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며, 이렇게 하면 다시 게임에 과몰입할 위험도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질병으로 간주되어 병원에서 치료받게 될 경우, 표준 치료법을 통해 표면적인 현상만 교정하려 하므로 완전한 치유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게임 이용 장애가 질병으로 인정된다면, 게임 업계 역시 큰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게임물이 담배, 알코올, 도박과 같은 중독성 물질로 취급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질병 코드 등재를 찬성하는 이해국 카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게임은 일반적인 상품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게임은 위험할 수 있는 상품이므로 공공과 시민 사회의 개입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어 질병 코드에 등재된다면, 공중 보건의 관점에서 '술', '담배', '도박' 등과 마찬가지로 게임 이용 장애를 줄이기 위해 ‘게임 이용 장애 예방세’와 같은 세금이 부과될 우려도 제기된다. 또한 청소년에게 게임 이용 장애가 빈발할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폐지된 ‘게임 강제적 셧다운제’와 같은 추가 조치가 시행될 우려도 있다. 이러한 규제는 산업의 성장에 악영향을 미치고, 경쟁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정부의 입장, 이제 남은 시간은 1년
이러한 우려를 반영하여 정부는 2019년 ICD-11이 통과된 직후인 2019년 7월 23일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 관련 민관 협의체’를 출범했다. 민관 협의체는 의료계, 게임계, 법조계, 시민단체, 관련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민간위원 14인과, 정부위원 8인으로 이루어졌다.
민관협의체는 KCD 등재 여부를 검토하기 위해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 과학적 근거 분석’, ‘게임이용장애 실태조사 기획 연구’,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파급효과 연구’ 등 3개 주제로 연구용역을 진행했다. 그러나 해당 연구 결과 외에 별도의 치열한 토론과 합의 없이 5년간 기초연구만 수행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9월 12일, 민주당 강유정 의원실은 ‘게임 이용 장애 질병 코드 국내 도입 문제 공청회’를 처음으로 개최했다. 정치권에서 주최한 게임 이용 장애 관련 토론회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기존 논의의 반복에 그쳤다. 과학적 사실이나 구체적인 논점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이 아쉽다.
바로 내년 게임이용장애의 KCD 등재 여부가 결정되어야 하며,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민관 협의체가 수행한 연구를 통해 기초적 조사는 확보된 상태이므로, 세부적인 논점과 우려를 정리해야 한다. 이를 조율하고 조정하는 것은 정치권의 역할이 될 것이다. 최초 공청회를 넘어 다양한 공청회 토론회를 통해 세부적 논점을 조율하고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이 기사는 digitalpeep님의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