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제품 발표 전까지는 대부분의 얘기가 추측에 불과하지만, 새로운 아이패드에 대한 기대는 여느 때보다 컸다. 드디어 PC와 태블릿PC의 경계가 무너지나 싶었다. 모바일 OS가 아니라 맥 OS가 탑재된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비록 소문은 소문일 뿐이었지만, 정말로 맥 OS가 탑재됐다면 지금과 같은 평은 훨씬 줄어들었을 수도 있다.
출시 2개월가량 지난 현재 아이패드 프로의 평은 여느 때처럼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데, 그 결과는 약간 비관적이다. 모 해외매체의 동영상 리뷰에선 ‘아이패드 프로를 사지 말아야 할 이유’라는 타이틀까지 내걸었다. 왜 그런지 알아봤다.
노트북보다 큰 태블릿PC
아이패드 에어보다 큰 사이즈의 태블릿PC의 출시는 애플의 공식 키노트 전부터 예고됐던 소식이었다. 이미 7.9인치 미니와 9.7인치 에어 2종으로 태블릿PC 시장을 47% 점유하고 있는 애플로선, 굳이 더 큰 사이즈의 태블릿PC를 출시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더 작은 사이즈는 아이폰6플러스에서 5.5인치로 만족시켰으니, 9.7인치보다 더 큰 태블릿PC의 출시는 용도의 범위를 약간 좁혔다고 볼 수 있다. 아이패드 에어보다 78%나 많은 560만 픽셀의 아이패드 프로는, 사실 일반인이 아니라 전문가용 앱을 더욱 원활히 구동할 수 있는 용도로서 출시됐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데모 형식으로 전문가용 앱을 구동해 봤다. 오토데스크의 ‘ AutoCAD 360’, 어도비의 ‘Sketch’ 등은 PC에서 같은 프로그램으로 작업하던 것을 거의 그대로 구현할 수 있다. 특히 2D/3D 캐드나 포토샵 등은 현장에서도 PC 대비 70% 이상의 활용이 가능해 전문가들의 손에서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다.
성능
모바일 기기 벤치마크의 대표적인 두 프로그램 ‘Geek Bench 3’와 ‘3DMark’를 사용해 아이패드 프로의 성능을 테스트했다. 3DMark는 기존의 Ice Storm으로는 나날이 높아지는 성능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모드 ‘Sling Shot’을 내놓았다. 각각 일반 버전과 수직동기화(V-Sync) 해제 버전으로 테스트했다. API 오버헤드 피처 테스트를 포함해 모든 테스트는 3회 측정한 뒤 중간 값을 선정했다.
Geek Bench 3
아이패드 프로는 2.3GHz로 동작하는 듀얼코어 A9X 프로세서와 4GB RAM을 탑재했다. 싱글코어 점수는 3,240점으로, 현존하는 모바일 기기 중 최초로 긱벤치 3 싱글코어 테스트에서 3천점을 넘었다. 아이패드 에어 2(이하 에어2) 대비 무려 79%나 향상된 성능이다. 멀티코어 점수는 5,499점으로, 에어2의 4,529점 대비 21% 이상 높은 점수다. 아이폰6S에 적용된 A9 칩의 싱글코어 2,551점, 멀티코어 4,448점보다도 각 27%, 23% 높은 성능이다.
3DMark Sling Shot
노멀 (수직동기화 적용)
3DMark 슬링샷 테스트는 OpenGL ES 3.0/3.1을 지원하는 테스트 앱으로, iOS에선 3.0을 지원한다. V-Sync가 적용된 일반 모드의 점수는 그래픽 7,293점, 피직스 1,583점, 총점 4,049점을 기록했다.
언리미티드 (수직동기화 해제)
V-Sync가 해제된 Unlimited 버전 테스트 결과. PC 성능 테스트도 V-Sync를 해제해야 제 성능을 알 수 있듯 3DMark도 마찬가지다. 언리미티드 버전의 결과는 그래픽 8,222점, 피직스 1,602점, 총점 4,287로 V-Sync를 적용했을 때보다 약 5% 가량 높게 측정됐다.
API Overhead feature test
3D 게임이나 작업을 할 때 각 프레임마다 수천, 수만의 드로우 콜(API 호출)이 발생한다. 프로세서가 이 드로우 콜을 얼마나 많이,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지에 따라 API의 성능이 결정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API 오버헤드 피처 테스트는 그래픽 표준 규격인 OpenGL의 ES3.0 버전과 애플의 그래픽 표준인 Metal의 드로우 콜 성능을 분석할 수 있는 테스트다. 아이패드 프로의 테스트 결과는 OpenGL ES3.0에서 초당 약 34만 드로우 콜, Metal에서 약 187만 드로우 콜을 처리하는 것으로 기록됐다. A9 칩의 약 29만, 138만 콜보다 각 16%, 35% 높은 성능이다.
스타일러스 펜, 휴대하기 불안
애플 펜슬
출시 당시 아이패드에 충전부를 꽂아둔 모습이 부채처럼 보인다 해서 관심 아닌 관심을 얻게 된 애플의 첫 스타일러스 펜. 애플 펜슬의 첫 모습이 신기함보다 다른 부분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아이패드 프로가 애플펜슬의 신호를 초당 240회 스캔하며 압력과 기울기 등을 정확히 표현해 주는 것은 좋은 점이다. 애플펜슬 덕분에 메모, 메일 등 기본 앱을 비롯해 어도비 포토샵, 픽셀메이터 등 그림 앱을 다루기가 좀 더 수월해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거꾸로, 애플펜슬이 있어서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애플펜슬이 없어서 할 수 없는 일로 아이패드 프로의 용도를 구분해 보자. 에어2부터 구세대 아이패드를 사용하던 수많은 사용자들이, 제조 공정이 복잡해 아직도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애플펜슬을 구매할 마음이 생길지는 의문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한 태블릿과 스타일러스 펜으로서의 가치가 뛰어난 것은 확실하나, 이미 그림을 위한 태블릿과 스타일러스 펜의 분야에는 절대적인 강자가 군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애플펜슬은 이렇게 사용할 수 있다’는 말과 설명에도, 왜인지 계륵이란 생각이 자꾸 들어 쉽사리 지갑이 열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커버 일체형, 좋지만 무겁다
스마트 키보드
사실 기자 개인적으로는 애플펜슬보다 스마트 키보드에 더 관심이 간다. 기존의 스마트 커버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데, 여기에 키보드가 더해져 태블릿PC에서 컨버터블PC에 좀 더 가까워진 것. 아이패드 프로의 왼쪽에는 기존에는 없었던 접지 부분이 있는데, 스마트 키보드와 결합하면 이 접지부에서 키보드에 전력을 전달해 준다. 키보드와 연결된 3단 커버의 가운데에 나일론 시트와 금속을 융합한 전도성 물질을 심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키보드의 윗부분 홈에 아이패드를 거치하면, 키보드를 입력하는 화면에서 키보드 창이 나타나지 않는다. 덕분에 블루투스 키보드처럼 아이패드 프로와 별도의 연결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것은 큰 장점이다. 키보드 자체도 생활방수가 가능해 야외에서 사용하기에 편하다.
하지만 장점만 있을 순 없는 법. 기존의 스마트커버에 고스란히 키보드의 두께가 더해져, 후면 실리콘 커버까지 더하면 6.9mm인 아이패드 프로의 얇은 매력이 사라진다. 게다가 실리콘 커버와 스마트 키보드를 더한 아이패드 프로의 무게는 약 1,210g이다. 여기에 어댑터까지 더하면 약 1.3kg으로 어지간한 울트라북이나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이패드 프로를 테스트하는 3주 동안 매일 가지고 다녔는데, 역시나 휴대하지 않았을 때와 꽤나 차이가 느껴질 정도였다.
역시 걸림돌은 가격
매번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가격 역시 망설임의 요인이다. 기본 99만 원부터 시작하는 아이패드 프로는, Wi-Fi + 셀룰러 모델은 128GB 하나뿐이다. 기존에 용량별로 Wi-Fi + 셀룰러 모델이 모두 있었던 것에 비하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여기에 애플펜슬과 스마트키보드를 더하면 도합 170만 원이다. ‘태블릿PC 한 번 써볼까’ 정도의 가벼운 마음으로는 접근조차 어려운 가격이다. ‘전문가용’이란 수식어가 보이는 것 같은 아이패드 프로는, 아직도 국내 컴퓨터 사용 여건에서 노트북을 대신하기엔 2%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