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통법 시행 한 달, 무엇이 문제인가?
상태바
단통법 시행 한 달, 무엇이 문제인가?
  • stonepillar
  • 승인 2014.12.10 10: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행 전부터 많은 논란을 야기했던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 예정대로 지난 10월 1일부터 전격 시행됐다. 법률 이름이 너무 길어서 일반적으로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으로 많이 알려져 있으며, 여기서 한 번 더 축약해 ‘단통법’이라고 부른다. 간단히 말하면, 그 동안 행정차원에서 권고됐던 휴대전화 보조금 규제가 본격적으로 법제화 되면서 더욱 강력한 힘을 갖게 됐다. 게다가 소비자 입장에서는 약정4라는 새로운 족쇄까지 추가 됐다. 그리고 시행 1주일 만에 거짓말처럼 휴대전화 시장은 꽁꽁 얼어붙고 말았다.
 
 
 단통법, 발단은? 
 
국내에서 휴대전화를 구입해 본 사람이라면 가격이나 요금제 등에서 불합리함을 느낀 경우가 있을 것이다. 또, 같은 기종이라도 대리점마다 가격이 다르고, 주변 사람과 비교해 보면 구입 가격이 모두 다른 경우도 비일비재 하다. 이처럼 휴대전화 구입 가격이 천차만별인 이유는 이른바 보조금이라는, 이동통신 가입 시 소비자에게 제공되는 혜택이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특정 제품을 더 많이 판매하기 위해 높은 보조금을 제공하기도 하고, 정보에 어두운 소비자들에게는 비싼 가격에 판매하기도 하는 등 그 동안 휴대전화의 가격은 이동통신사, 제조사, 그리고 대리점과 판매점의 방침과 사정에 따라 변해왔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정보 수집이 빠른 소비자들은 온라인 등에서 기습적으로 치고 빠지는 게릴라식 판매자들을 통해 좋은 조건으로 휴대전화를 구입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대다수의 일반 소비자들은 고가의 단말기 가격을 그대로 지불하는 비정상적인 유통구조가 만들어졌다. 정부에서는 이러한 유통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보조금 상한선을 제한하고, 단속도 했지만, 장기적으로 큰 효과를 보지는 못하고 있었다. 마침내 수년 동안 계속된 이 불합리한 유통구조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국회에서도 일었고, 2013년 6월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안’이 제3차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이하 미방위)에서 발의됐다.
 
이 법률안은 이후 공청회 등을 거쳐 몇 차례 수정과 대안이 제시되는 과정 끝에 지난 5월 국회 본회의에서 총 298명 중 찬성 213명이라는 높은 지지율로 통과됐다. 새누리당 120명, 새정치민주연합 85명 등 여야를 가리지 않고 대체적으로 찬성표를 던졌는데, 높으신 분들이 얼마나 민생 실정을 모르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단통법 시행 1주일 만에 이동통신 시장의 위축됐다는 기사가 쏟아졌고, 정의당은 2주 후인 10월 14일 공식적인 사과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사실 법안의 취지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었다. 편법과 불법이 난무하는 휴대전화 유통구조를 바로잡고, 모든 소비자들이 차별 없이 정상적인 가격으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법안이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비정상적으로 고가로 책정돼 있는 현재의 단말기 가격과 폐쇄적인 유통 과정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방안이나 보완책이 전무한 상태에서 최종적으로 판매자와 소비자들 간의 거래에만 규제를 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이 그렇긴 하지만, 높으신 분들은 잘 모르는 것들이 많은 듯하다.(사진 출처: 국회 홈페이지)
 
 위축된 소비심리 
 
단통법 시행이 결정되면서 인터넷 상으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나타내고 있었다. 단통법에 대비해 미리 휴대전화를 바꾸는 사람들도 많았고, 행여 단통법 시행 기간 중에 휴대전화가 고장날 것을 대비해 여분의 제품을 구매하는 사람들도 간혹 눈에 띌 정도였다. 그래도 일부의 사람들은 높으신 분들의 주장처럼 휴대전화 가격이 안정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품기도 했었지만, 단통법 시행 첫날 각 통신사에서 공시한 단말기 가격은 이런 기대를 산산히 깨버렸다.
 
단통법 시행령에는 이동통신단말장치의 가격을 이동통신사들이 공시하도록 명시돼 있는데, 점유율 1위인 SKT의 공시를 살펴보면 삼성전자 갤럭시노트4의 판매가격은 846,000원이다. 갤럭시노트4의 출고가는 957,000원이고 지원금으로 총 111,000원을 받는다. 그나마도 이 지원금을 다 받기 위해서는 가장 비싼 요금제로 2년 약정을 걸어야 한다. 저렴한 LTE34 요금제를 선택하면 지원금은 37,000원으로 줄어든다. 출시된지 1년이 넘은 갤럭시노트3가 LTE100 요금제로 사용 시 227,000원의 할인을 받아 653,000원이 된다.
 
기계 값도 문제지만, 단통법과 함께 시행된 위약금4도 소비자들의 발목을 잡는 또 하나의 걸림돌이다. 지금까지는 사용하던 휴대전화를 중간에 해약할 때 위약금3이라 불리는 요금제 할인 혜택을 반환하고, 그때까지 납부하고 남은 단말기 값만 지불하면 됐다. 가령 출고가 100만 원의 단말기를 2년 약정 조건으로 30만 원의 보조금을 받아 1년만 사용하고 해지했다고 가정해 보자. 지금까지는 보조금을 제외한 70만 원의 단말기 값 중에서 1년 동안 할부로 납부한 금액을 빼고 남은 단말기 값만 지불하면 됐다. 그러나 위약4 제도 시행 후에는 남은 단말기 가격과 처음에 보조금으로 받은 30만 원까지 모두 반환해야 한다.
 
일명 ‘폰테커’들을 견제하기 위한 방안이긴 한데, 약정 기간을 다 채우는 일반 소비자들도 행여 휴대전화를 분실하거나 고장이라도 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또, 요금제를 중간에 바꿀 경우에도 보조금의 변동 폭 만큼을 반환해야 한다. 결국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목줄이 하나 더 걸린 셈이다. 보조금 규제로 비싸진 단말기 값과 위약금4에 대한 부담감으로 이동통신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얼어붙은 모습이다.
 
단통법 시행 1주일 동안의 이동통신 가입자 변화를 살펴보면 신규 가입자는 58% 감소하고, 번호이동 가입자도 46.8% 감소한 반면, 기기변경 가입자는 29.7%로 증가했다. 많은 소비자들이 약정에서 자유롭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고 단말기나 자급제 단말기로 갈아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 단통법의 유일한 순기능은 자급제 단말기 시장의 활성화에 일조한다는 점이다. 현재 소니의 엑스페리아 시리즈가 자급제 시장에서 인기가 높은데, 소니코리아 사장은 ‘단통법이 우리에겐 기회’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누구를 위한 법인가? 
 
단통법을 너무 근시안적인 시각에서 단점만 부각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애초에 단통법이 시행되면 일시적으로 단말기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건 업계 관계자는 물론이고 소비자까지 모두 예상하고 있던 뻔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높으신 분들의 생각은 자유경제 체제의 공급과 수요의 법칙에 따라 고가의 단말기가 팔리지 않으면 가격이 점차 내려갈 것이며,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적정한 단말기 가격대가 형성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과정이 단시간 내에 이루어질 리는 만무하다.
 
단통법의 효력은 3년. 즉, 이 법안은 3년이라는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옹호론자들의 설명이다. 이들의 주장도 일리 있다. 그런데 당장 한 달도 되기 전에 너무 많은 문제점들이 노출되고 있다. 1차적으로 비싼 가격으로 단말기를 구입해야 하는 소비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 2차적 피해는 시장이 침체되면서 매상이 줄거나 폐업 위기에 처한 영세 사업자들의 몫이다. 이와 함께 각 제조사들도 신규 가입자가 줄어들면서 울상을 짓고 있다. 현재 이득을 보고 있는 곳은 오직 이동통신사 뿐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봐야 한다면, 그것이 과연 옳은 정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비단,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 어디를 가도 이동통신사들의 횡포는 쉽게 목격할 수 있지만, 여러모로 기업 친화적인 국내의 경우 이동통신 3사의 시장 지배력은 더욱 강력하다. 얼마 전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됐던 700MHz 대 주파수 할당 문제도 이동통신사들의 파워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국가별로 할당된 주파수는 국가의 자산으로, 국민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이번에 논란이 된 700MHz 대역은 본래 TV 방송용이었다가, 방송이 디지털로 변환된 후 반납돼 비어 있는 상태였다. 이 대역의 주파수는 속도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던 이통사들에게 군침 도는 먹잇감이었고, 주무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는 이를 이통사들에게 할당할 계획을 밝혔다.
 
문제는 이 주파수를 이동통신사들이 가져갈 경우 방송용 주파수가 부족하게 돼 앞으로 시작될 4K 방송을 제한된 지역에서만 시청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즉, 전 국민이 4K 방송을 시청하기 위해서 700MHz 대역의 주파수가 꼭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국민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할 미래창조과학부가 이미 이 주파수 대역을 통신용이라고 못 박아 버린 것이다. 국민의 재산이 공익보다 기업의 이익을 위해 팔려나가는 이번 사태는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운 이동통신사들의 로비와 수조 원대의 이득을 노린 관계 부처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국내 통신사들은 곳곳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를 규제하거나 견제할 수단은 현재로선 딱히 없다고 볼 수 있다. 이번 단통법 역시 결과적으로 이동통신사를 제외한 관련 업계와 소비자들이 모두 피해를 보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추이를 지켜보자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심지어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최성준 위원장은 단통법과 관련해 “소비자에게 지원금 혜택을 많이 드리기 위한 법이 아니다”라는 발언을 함으로써 현재 소비자들이 받는 피해에 대해서 무책임한 태도를 보여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 광대역 LTE-A에 이어 다가올 5G 통신망까지 고려했을 때, 이통사들이 700MHz 대역 주파수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다시 도마에 오른 분리공시 
 
단통법이 처음 취지와 달리 시대를 역행하게 된 가장 큰 이유로는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부분은 손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초 단통법이 제안될 때는 통신사의 지원금과 제조사의 판매 장려금이 모두 공개되는 분리공시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무산됐다. 하나의 국가에서 원가가 공개 되면 다른 나라의 통신사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고, 다른 제조사들에게 영업비밀이 노출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보조금 분리공시는 이동통신 단말기에 제공되는 보조금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출고가의 거품을 제거해 단말기 유통 가격을 낮추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사실상 단통법의 핵심적인 조항인데, 단통법 시행 1주일을 앞두고 돌연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문제를 제기했고, 법제처가 상위법인 단통법과 하부고시에 포함된 분리공시가 상충한다는 유권 해석을 내렸다. 이를 바탕으로 규제개혁위원회는 방통위에 분리공시 삭제 권고를 내렸고, 방통위가 이를 수용함으로써 최종적으로 분리공시 조항이 사라졌다.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 과정에 삼성전자의 로비력이 개입됐다는 것이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한다. 실제로 KBS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12월 있었던 미방위 법안심사소위원회 속기록에서 단통법에 관련된 내용은 18쪽 분량이었으며, 이 중 삼성전자와 관련된 내용이 무려 14쪽을 차지했다고 한다. 주 내용도 삼성전자의 영업비밀이 공개 됐을 때의 부작용에 대한 것들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제조사의 장려금 지급 규모가 공개될 경우 이를 공개한 당사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발언까지 나왔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소비자 보호 관련 내용은 고작 2쪽 분량에 불과했다. 이쯤 되면 정부와 국회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결국, 지난 10월 14일 단통법에 분리공시를 추가하는 개정안이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최민희 의원에 의해 제출됐다. 뒤늦게나마 문제점을 개선해 보겠다는 움직임이지만, 이미 민심은 싸늘하게 식은 상황이다. 어차피 삼성전자가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이상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 분리공시 조항 삭제 과정은 ‘삼성공화국’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고, 살아남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단통법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 
 
시행 전부터 많은 우려를 낳았던 단통법은 시행 후 더 큰 혼란을 야기했다. 게다가 위에서부터의 개선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니 이제는 소비자들이 알아서 현명한 소비를 해야할 판이다. 마음 같아서야 ‘전 국민 호갱화’를 추진한 국내 이동통신사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손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을 강구해야 한다.
 
일단, 지금 상황에서 이동통신사가 공시하는 가격대로 2년 약정으로 휴대전화를 개통하는 것은 그야말로 최악의 선택이니 배제해야 한다. 최선책은 단통법 이전에 개통한 휴대전화를 최대 3년, 최소한 단통법의 개정안이 발효되고 시장에 어떠한 변화가 있을 때까지 버티는 것이다. 차선책으로는 약정4에서 자유로운 자급제 단말기나 중고 단말기를 적극 활용하고, 필요하다면 해외 직구로 저렴한 보급형 단말기를 구입하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마침 전파인증 강화 법안이 12월 4일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어, 휴대전화의 해외 직구를 고려했던 소비자들을 당황시키고 있다. 딱히 휴대전화만을 겨냥한 법안은 아니지만, 시기가 단통법과 겹치다 보니 국내 휴대전화 시장의 갈라파고스화, 혹은 쇄국정책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전파법 개정안 제58조 2의10항에 따르면, “누구든지 전자파적합성평가를 받지 않은 방송통신기자재(휴대폰·TV·PC·카메라 등)의 판매를 중개하거나 구매 대행 또는 수입을 대행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고 명시돼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에서 공개한 스마트폰의 전파인증 적합 시험비용은 약 3300만 원으로, 여기에 평가 수수료 16만 5000원이 더해지면 스마트폰 하나의 구매대행비로 무려 3316만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단, 이는 어디까지나 판매를 목적으로 했을 경우에 발생하는 비용이며, 개인이 해외의 쇼핑몰에서 직접 구매하는 제품에 대해서는 기존처럼 전파인증이 면제된다는 것이 미래창조과학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개인 구매와 구매대행을 구분할 명확한 기준이 없고, 단통법 사태까지 겹쳐져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휴대전화 구매대행 시에도 전파인증을 면제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한 발 물러섰다.
 
차라리 조금 불편하더라도 직접 해외 쇼핑몰에서 구매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여러모로 속편할 것이다. 다행히 요즘은 인터넷에서 관련 정보들을 쉽게 접할 수 있으니, 관심 있는 독자들은 직접 찾아보자. 그나마 단통법으로 인해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면, 소비자들이 갈수록 똑똑해지고, 살아남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smartPC사랑 | 석주원 기자 juwon@ilovepc.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