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성착취물 취약국 1위"... 딥페이크 범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smartPC사랑=정혜]
딥페이크 음란물에 등장하는 개인 가운데 53%가 한국
최근 딥페이크 성범죄의 심각성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2020년 N번방 성범죄 사건 이후, 디지털 성범죄 방지법이 제정되었음에도 디지털 성범죄는 오히려 확산되고 있다. 특히 가해자와 피해자의 연령대가 점차 낮아지고 있어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딥페이크 성범죄는 기존의 성범죄와는 차원이 다르다. 인스타, 페이스북 등 온라인 네트워크에 자신을 소개하는 사진을 올려놓은 모든 사람이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가해자들은 지인이나 친구들을 대상으로 딥페이크 음란 영상물을 만들어 그 가족에게 전송하거나, 학교폭력 및 집단 따돌림의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올해에만 국내 피해자가 1,000명을 넘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미국의 한 사이버 보안업체 '시큐리티 히어로'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세계 딥페이크 성착취물의 피해자의 절반 이상이 한국인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2023 딥페이크 현황 보고서')
그리고 보안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 텔레그램이 주로 범죄에 악용되고 있는데 2년 전 카카오톡 먹통 사태 이후, 많은 이용자가 카톡에서 텔레그램으로 메신저 플랫폼을 옮기면서 텔레그램의 이용률이 급격히 증가했다. 보안성이 높아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메신저(텔레그램)가 딥페이크 음란물을 공유하고 협박하는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다.
미성년자 피해자 4.5배 증가, 전국 학교 공포 확산
올해 들어 딥페이크(이미지·음성 합성기술)를 활용한 불법 합성물 성범죄로 정부 기관에 지원을 요청한 피해자 3명 중 1명 이상이 19살 미만 미성년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은 28일, 올해 1월 1일부터 지난 25일까지 약 8개월간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디성센터)에 불법 합성물 피해로 삭제 등 지원을 요청한 781명 가운데 36.9%인 288명이 19살 미만 아동·청소년이었다고 밝혔다.
디성센터에 불법 합성물 피해 지원을 요청한 미성년자는 2022년 한 해 64명에서 2023년 124명으로 거의 두 배 가까이 증가했으며, 올해 8월 25일 기준으로는 288명에 달했다. 2년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피해 지원을 요청한 미성년자 수가 4.5배나 늘어난 셈이다. 같은 기간 동안 불법 합성물 성범죄 피해로 지원을 요청한 전체 피해자는 212명에서 781명으로 3.7배 증가했다. 특히 중고등학생 등 미성년 여성들의 피해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오죽하면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피해 학교 명단을 만들고 있는데, 피해 학교는 전국 중·고교생과 대학 200곳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공포에 질린 학생들은 스스로 SNS 계정을 삭제하거나, 카카오톡 프로필에서 얼굴 사진을 내리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나이 어린 가해자들
가해자들은 딥페이크 기술을 악용해 동급생이나 교사를 대상으로 친족 성폭력을 암시하는 대화를 제작해 유포했는데, 이들은 ‘더 자극적이고 과감한 자료 업로드’를 위한 경쟁하며, 마치 게임을 하듯이 이를 제작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영상물을 아무런 윤리적 거리낌없이 유포하고 협박의 수단으로 이용했는데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받을 충격과 상처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텔레그램을 기반으로 한 딥페이크 성착취물 대화방의 존재가 공론화된 27일에도, 단체 대화방 참여자들은 여전히 기민하고 조직적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많은 방들이 폐쇄됐다가 ‘대피소’ 등의 형태로 다시 열렸으며, 방 하나에 2,000명이 넘는 인원이 순식간에 모였다. 이들은 언론보도에 움추려들지 말라는 내용을 공유하며 여전히 ‘지인능욕’ 딥페이크 영상물을 제작하라고 독려하는 메신저를 주고받고 있었다.
낮은 처벌 수위, 성범죄 확산 막지 못해
왜 디지털 성범죄가 근절되기는커녕 진화된 기술을 이용해 더 확산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로 현재 우리나라의 디지털 성범죄 처벌 수위가 너무 낮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디지털 성범죄는 지인을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고, 온라인이라는 공간 특성상 제작·유포가 상대적으로 용이하지만, 피해자들이 받는 고통은 상상 이상의 수준이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 벌금'이라는 양형 기준부터 너무 낮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가해자들이 미성년자이거나 청년들이라는 이유로 가볍게 처벌하고 집행유예를 쏟아내는 데 범죄가 판치지 않는 게 이상할 지경"이라고 비판했다.
디지털 성범죄는 일반 성범죄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므로, 차별화된 처방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N번방 범죄를 세상에 알린 불꽃 추적단의 박지현 전 민주당 비대위원장은 "미국처럼 디지털 기기 접근을 제한하는 법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미국 플로리다주는 2005년 7월 이후 성범죄를 저지른 보호관찰 대상자는 성범죄자 치료 전문가 승인이 있기 전까지 인터넷 서비스에 접근할 수 없다. 또한, '제시카법'을 통해 성범죄자가 학교나 놀이터 등 반경 300m 내에 거주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도 처음 제정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추가 조치들은 미국에서도 논쟁적인 사안이다. 예를 들어, 성범죄자의 SNS 접속을 금지한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아동 대상 성범죄 전과자를 기소했지만, 2017년 대법원은 이를 수정 헌법 1조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결하여 법안을 뒤집었다.
텔레그램 창립자, 메신저 범죄 악용 방치한 혐의로 체포
한편, 디지털 성범죄의 온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비밀 메신저’ 텔레그램의 창업한 러시아 기업인 파벨 두로프 최고경영자(CEO)가 24일 프랑스에서 체포됐다. 두로프는 텔레그램이 범죄에 악용되는 것을 막으려는 조처를 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텔레그램 창업자 두르프 체포이후 프랑스 검찰은 텔레그램 공동창업자인 그 형인 니콜라이도 체포영장을 발부한 상태다. 수사 관련자가 전한 문서에 따르면, 두로프 형제에 대한 체포영장은 "조직화된 그룹에서 미성년자의 음란물 이미지를 소지, 배포, 제공, 제작하는데 공모한 혐의" 등으로 발부됐다. 파리 검찰청 사이버 범죄 부서는 미성년 소녀들을 유인해 '자체 제작한 아동 포르노'를 전송하도록 한 후 이를 SNS에 공개하겠다고 협박한 사건을 수사하면서 텔레그램에 용의자의 신원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텔레그램은 응답하지 않았고 이후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강력한 처벌과 동떨어진 '현실'
2020년 N번방 사건 이후 기존의 성범죄 처벌에 비해 강력한 법이 제정되었으나, 해당 법에 따라 가해자를 처벌하려면 ‘유포 등을 할 목적’이 있었음을 입증해야 한다. 또한, 불법 영상물을 제작한 사람만 처벌 가능하고, 이를 시청∙소지한 자는 처벌 대상이 아니다.
당시에도 딥페이크 성범죄와 관련해 ‘가짜 연예인 음란 동영상’, ‘지인 능욕’이 사회 문제로 부각됐지만, 국회 입법 과정에서 의원과 당국자들이 보여준 인식 수준은 현실과 거리가 멀었다. 딥페이크 영상을 예술의 일종으로 여기는 등의 인식이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미온적인 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매년 수천 건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법 개정 이후 지난 5년간 판결을 받은 사례는 71건에 그쳤고, 그중 35건은 집행유예가 내려졌다.
그리고 28일 서울대 졸업생들이 동문 여성의 얼굴을 합성한 음란물을 만들어 유포한 이른바 '서울대 딥페이크'(서울대 N번방) 사건의 공범에게 징역형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4단독 김유랑 부장판사는 28일 성폭력처벌법상 허위영상물편집·반포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박모(28)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허위 영상물 내용은 일반인 입장에서 입에 담기 어려운 역겨운 내용"이라며 "익명성과 편의성을 악용해 수치심이나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 채 스트레스 풀이용으로 도구화했다"라고 지적했다.
박씨는 2020년 7월부터 올해 4월까지 허위 영상물 400여 개를 제작하고 1천700여 개를 유포한 혐의로 지난 5월 기소됐다. 당시 사회적 모범생이라고 예측되는 인물이 딥페이크 성범죄를 주도적으로 범했다는 사실만은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이는 이제 더 이상 누구도 안전할 수 없으며 누구도 범죄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다.
딥페이크 성범죄 국가적 재난, 컨트롤타워 필요
딥페이크 성범죄가 상식의 둑이 무너진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자, 정부는 강력한 대응에 나섰다. 여당에서는 딥페이크(인공지능 등을 활용한 영상 합성) 성범죄 대응을 위해 국무조정실 내에 컨트롤타워를 설치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는 범죄 수사, 영상물 차단, 피해자 지
원, 방지 교육 등 업무를 총괄하여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허위 영상물 유포에 대한 처벌 조항을 불법 촬영물과 동일한 수준으로 강화하자는 방안도 제시되었다.
교육부는 긴급 전담조직을 만들고 매주 실태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지자체와 경찰, 각 부처도 대응에 나섰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긴급 전체회의를 소집하고 국내 주요 포털사이트는 물론 텔레그램과 페이스북·엑스(X)·인스타그램·유튜브 등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들과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 또한, 서울시는 24시간 이내에 딥페이크 음란물 영상을 삭제하는 ‘핫라인’을 가동한다.
경찰은 지방경찰청별로 모니터링에 착수하고, 관련 수사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이달 26일 딥페이크 음란물을 자동 생성하는 텔레그램 프로그램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으며, 이틀 만에 8개 프로그램에 대한 입건 전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상적 디지털 성범죄, 우리는 안전할 수 있을까
딥페이크 성범죄를 포함한 디지털 성범죄는 단순히 피해자만이 문제가 아니다. 어떠한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하고 자행하는 가해자들도 심각하게 인격권이 파괴되는 행위이다. 그리고 이는 그동안 인류가 쌓아온 사회적 윤리를 무너뜨리고 있다. 무엇보다 텔레그램과 같이 해외플랫폼에서 일어나는 범죄행위와 관련 국내의 법률체계를 뛰어넘는 국제적 대응이 시급히 필요하다.
지금 딥페이크 성범죄를 국가적 재난수준이라고 보는 이유는 사회적 윤리의식을 만들어 나아가야 할 청소년들이 자신들이 한 행위의 불법성을 알지 못할뿐더러 자신과 가까운 친구나 친족 지인을 대상으로 한 행위로 피해자가 받을 고통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앞으로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갈 디지털세대이고 적지않은 청소년들이 이 일로 피해를 보고 가해를 한 경험이 있다면 이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넘어서 국가적 재난으로 대응해야 하는 것이 맞다.
디지털 생태계가 건강하게 유지되고 발전되기 위해서는 범죄행위뿐 아니라 범죄 동기와 확산되는 과정을 주목하고, 디지털 시민 모두의 관심과 근절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 대책은 무엇보다 실제 피해를 입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 기사는 digitalpeep님의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