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재미에 우열이 있을까?
[디지털포스트(PC사랑)=나스 기자]
치트와 전략 사이, 1998년 스타크래프트의 추억
1998년, 블리자드는 <스타크래프트>라는 혁신적인 게임을 선보였다. 당시에는 ADSL과 같은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 초기 단계였고, PC방 역시 대중적이지 않던 시기여서, 당시 게이머들은 <스타크래프트>의 주력인 멀티 플레이어 경기를 즐기기보다는 싱글 플레이 캠페인을 즐기는 경우가 더 많았다.
실제로 <스타크래프트>의 싱글 캠페인은 생각보다 난이도가 꽤 높은 편이다. 초반에는 튜토리얼 수준의 쉬운 난이도로 시작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정교한 컨트롤과 전략적 판단을 요구한다. 실력이 뛰어난 플레이어들은 별 어려움 없이 캠페인을 클리어했지만, 그렇지 않은 유저들은 다양한 치트를 활용하기도 했다.
“Show me the money”(자원을 추가하는 치트키)
“Show me the money”(자원을 추가하는 치트키) “Power overwhelming”(무적 상태로 만들어주는 치트키) 등은 당시 스타크래프트 싱글 플레이어를 즐겼던 유저들이 기억하는 대표적인 치트키일 것이다. 심지어 이때 유명해진 Show me the money는 이후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제목으로 사용되며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일부 유저들은 "치트를 쓰면서 게임을 클리어하면, 무슨 재미가 있냐"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실제로 치트에 의존하면 게임 실력을 키우기 어려우며, 아슬아슬하게 클리어하는 짜릿한 재미를 느끼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치트를 옹호하는 유저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재도전하는 대신, 자신의 방식대로 게임을 진행하고 스토리를 즐기는 데에서 더 큰 재미를 느낀다고 주장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점이 게임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게임 치트와 공정 경쟁 사이에서의 "놀이의 본질"
게임은 본질적으로 놀이의 한 형태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재미다. 그런데 그 재미는 당연히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어떤 유저는 치트키를 써서 압도적인 물량으로 적을 섬멸하는 데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반면, 반대로 치트키 없이 몇 번의 시도 끝에 어렵게 클리어하는 데에서 재미를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게임사가 의도한 것은 후자의 방식일 수 있지만, 전자의 방식으로 게임의 재미를 즐긴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게임은 놀이 수단이지 꼭 완수해야 할 업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멀티플레이어가 중심이 되는 시대로 접어들면서, 공정한 경쟁을 위해 치트키는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 <스타크래프트> 역시 싱글 캠페인에서만 치트키 사용이 가능하며, 다른 이용자와 경쟁하는 콘텐츠에서는 당연히 치트키를 쓸 수 없다.
흥미롭게도, 부분유료화 모델이 대세가 된 이후 멀티플레이어에서의 치트키는 ‘돈’으로 대체되는 경향이 생겼다. 게임에 따라 다르지만, 무료나 소액 과금만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더 강력하고 압도적인 경험, 즉 “Show me the money”나 “Power overwhelming”과 같은 치트키의 강렬함을 느끼고 싶다면,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치트키의 개념이 다소 변형된 형태로 게임 속에서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주류 게임계에서 멸시받는 '리니지 라이크' 게임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대부분의 MMORPG는 이러한 문법에 따라 게임을 만든다. 물론 이는 NCSOFT의 <리니지 M>, <리니지 2 M>, <리니지 W>의 성공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게임들은 대체로 많은 현금을 투입해야만 다른 유저를 능가하는 스펙을 얻을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컨트롤과 같은 플레이 기술보다는 과금과 같은 전략적 요소가 게임 플레이의 주요한 부분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물론 이런 게임에서도 무료나 소액 과금으로 최강의 캐릭터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일정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구성해 놓는다. 보통 과금을 많이 한 유저는 앞에서 싸우는 탱커 등의 역할을 맡고, 과금이 적은 유저는 원거리에서 화력을 보충하는 딜러의 역할을 맡는 식이다. 게임 운영에서도 무료나 소액 과금 유저가 지나치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패치를 통해 밸런스를 조정하고 게임의 생태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문제는 현재 한국 주류 게임계에서 이러한 게임들이 ‘리니지 라이크’라는 이름으로 멸시받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이러한 게임들을 단순히 돈으로 우위를 점하는 수단에 불과하며, 진정한 게임성을 지닌 작품이 아니라고 평가절하한다. 이는 마치 <스타크래프트> 캠페인을 치트키로 클리어 한 유저를 진정한 게이머로 보지 않는 것과 비슷한 논리다.
게임의 재미에 우열이 있을까?
그러나 게임의 재미에 우열은 없다. 게임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놀이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용자가 흥미를 잃고 게임을 떠나게 되면, 과금 유저와 무과금 유저 간의 격차가 과도하게 벌어진 게임은 생명력을 잃고 이용자가 줄어들게 된다. 물론 이미 투자한 금액을 매몰 비용으로 만들지 않으려는 심리로 게임을 지속하는 유저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오늘날 세상에는 수많은 대체 게임이 존재하며, 새로운 게임으로 이동하는 전환 비용이 거의 없기 때문에 매몰 비용이 게임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일본의 프롬 소프트웨어는 <엘든 링>과 <다크 소울 시리즈>로 유명한 개발사다. 이 회사는 모든 게임을 고난이도의 이른바 ‘소울 라이크’ 게임만을 제작한다. 불친절한 게임 환경과 매우 어려운 보스 전을 통해 죽고 죽으면서 결국 게임 유저가 렙업해서 보스를 클리어한다는 ‘유저가 랩업하는’ 게임을 주로 만든다.
특정인에게는 이러한 게임은 자신이 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엄청나게 재미있는 게임일 것이다. 하지만 같은 도전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은 어떤 유저에게는 스트레스만 유발하는 게임일 수 있다. 프롬 소프트웨어는 그럼에도 최근에 만든 <엘든링>이 발매 3주 만에 1200만 장을 돌파하는 등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모든 대중한테 인기 있는 게임은 아니지만 특정 계층에게 인기 있는 게임을 만드는 회사임에도, 평론이나 유저의 반응이 좋다. 꼭 내가 ‘소울라이크’의 팬이 아니더라도, 그런 게임을 즐기는 사람을 존중하고 그 재미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게임의 과금 유도와 진정한 재미
한편, NCSOFT는 프롬 소프트웨어와 물론 다르지만, 기본적인 게임 운영 방식에서 큰 차이가 없다. 중세를 배경으로, 이용자 간 경쟁을 유도하면서도, 모든 이용자가 각자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게임을 운영하는 방식은 유사하다. 그러나 많은 이용자들은 NCSOFT를 ‘돈만 바라는 게임회사’라거나 , ‘게임의 재미는 전혀 없고, 단순히 이용자에게 어떻게 하면 더 과금을 하게 할지 고민하는 회사’로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른바 ‘리니지 라이크’ 게임의 성공은 단순히 NCSOFT의 비즈니스 모델이 과금을 유도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일부 이용자들은 그만큼의 돈을 지불할 만큼 게임에서 ‘재미’를 느낀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NCSOFT는 오히려 한국의 MMORPG 시장에서 과금을 줄이기 위해 ‘게임산업법’ 개정 등을 통해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규제를 도입하고, 경쟁력 있는 운영 분야에서 제약을 많이 걸어 놓은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어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부정적인 여론이 존재한다.
개인마다 느끼는 재미는 다를 수 있다. 그것이 불법적이거나 비윤리적이지 않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즐기는 것이 허용되어야 한다. 리니지를 즐기는 이용자들이나 그것을 운영하는 NCSOFT를 단순히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과금이나 시간 등을 통해 강해지는’ 게임과 ‘순수 컨트롤로 강해질 수 있는’ 게임이 공존하는 게임문화가 건강한 것이지, 어떠한 특정 분야의 게임만 존재하는 것이 건강하다고 볼 근거도 없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digitalpeep님의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