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재용 '기계적 상고(上告)'... 눈귀 막은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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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재용 '기계적 상고(上告)'... 눈귀 막은 검찰
  • 안태준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25.02.08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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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준 한양대 법학전문 대학원 교수. @디지털포스트
안태준 한양대 법학전문 대학원 교수. @디지털포스트

2017년 초 국정농단 파문 속 박영수 특검의 구속영장 청구를 시작으로 약 8년이 넘는 기나긴 사법절차 끝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마침내 사실심(事實審)의 최종심인 항소심 법원으로부터 부당합병과 회계부정 의혹을 원인으로 한 자본시장법 위반, 업무상배임죄, 외부감사법 위반 등 15개 세부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판결을 선고받았다.

이러한 항소심의 무죄 결론은 이 사건 1심 법원이 장문의 판결을 통해 이재용 회장과 관련된 공소사실에 대해 법리적으로도 근거가 없고, 증거적으로도 범죄 혐의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모두 무죄를 선고했을 때 법률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무엇보다 검찰의 무리한 기소를 상급법원에서 다시 한번 명확하게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사실 이번 이재용 회장에 대한 사법절차는 수사와 기소단계부터 논란이 많았다. 검찰은 외부전문가들로 구성된 수사심의위원회가 이재용 회장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기소했다. 이때부터 이미 기소의 적절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견해가 많았다.

삼성그룹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 역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법원은 검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증거 가운데 상당수의 증거능력을 부정했다. ‘위법 수집 증거’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를 통해 삼성그룹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 역시 일부 부적절한 부분이 있었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볼 수 있다.

이재용 회장이 8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검찰의 수사와 법원의 재판에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묶여 있는 동안, 국내외 경쟁사 총수와 CEO들은 기술혁신과 투자에 박차를 가했다. 그 사이 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초격차’ 경쟁력을 자랑하던 삼성전자는 기술개발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일부 경쟁사들이 삼성전자를 능가하고 있다는 분석도 수없이 쏟아지고 있다.

삼성전자 경영진의 무능함과 소극적 태도를 비판하는 견해도 있지만, 총수이자 최고경영자가 자본시장을 교란시킨 중범죄자로 낙인찍힌 상황에서, 해당 기업이 새로운 투자에 나서거나 적극적인 경영을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수시로 법원의 재판에 출석해야 하는 입장에서 파트너와의 협상과 거래를 위해 자주 해외출장을 다니는 장면, 혹은 웃는 표정으로 해외 유력인사들과 교류하는 장면 등이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된다면 재판에 불성실하게 임한다느니 반성의 기미가 없다느니 하는 비난을 자초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지나간 일은 잊고 이제는 미래를 봐야 한다. 항소심 법원이 이재용 회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다음날 세계 경제계 거물들이 동시에 삼성을 찾았다. 4일 오전 샘 올트먼 오픈 AI 최고경영자,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삼성전자 사옥에서 이재용 회장과 3자 회동을 했다. 3자가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등 대규모 AI 사업을 위해 전방위적인 협력을 모색했다는 것이 주변의 전언이다.

얼마 전 중국의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가 개발해 공개한 AI 모델(R1)이 전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불과 몇 년 사이 AI의 보급과 확대로 촉발된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격변은 삼성전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에 큰 도전을 안기고 있다. 

사실심의 최종심으로서의 서울고등법원 무죄판결을 계기로, 8년이 넘는 시간 동안의 소모적 사법절차는 이제 마무리할 시점이 된 것 같다. 검찰이 혹여라도 기계적인 상고를 함으로써 이 사건이 대법원 상고심까지 이어진다면, 삼성전자가 글로벌 AI 생태계에서 혁신하고 재도약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칠 수도 있다는 경제계의 목소리를 검찰은 귀담아들어야 할 것이다.

※ 필진 소개 - 안태준 교수

사법연수원 35기를 수료하고 청주지방법원에서 판사로 일했다. 이후 대형 로펌 파트너 변호사와 대형 회계법인 파트너 등 다채로운 경력을 쌓았다. 현재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있다. 지난해 2월 한국기업법학회 정기총회에서 '2023년도 기업법연구 우수논문상'을 수상했다.
 
<학력> 
런던 정경대(LSE) 법학석사과정 졸업(LL.M.)
서울대 법과대학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법학박사)
서울대 법과대학 대학원 석사과정 졸업(법학석사)
서울대 법과대학 법학부 졸업(법학사)

<경력>
청주지방법원 판사
법무법인(유) 율촌 파트너 변호사
EY(Ernst&Young) 한영회계법인 파트너 및 법무실장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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