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여름, 야후코리아 오픈 10주년 프로모션으로 진행한‘서브웨이 테일북 To you’캠페인을 취재하러 갔던 기자에게 담당 팀장이 말했다“. 어떻게 보면 국내 온라인 문화의 시작을 이끈 것은 야후였는데 지금은 다소 잊힌 이름이 됐다. 그래서 다시 야후라는 이름을 상기 시키고 위상을 되찾기 위한 캠페인이다.”하지만 야후는 결국 위상을 되찾지 못하고 2012년 겨울 진짜로 잊힌 이름이 됐다.
노유청 기자
노유청 기자
인터넷 문화의 시작, 야후코리아
PC통신이 작별의 인사를 고하던 1990년대 후반 야후코리아의 등장은 인터넷 문화를 꽃 피우는데 기폭제 역할을 했다. 조금 늦은 감은 있었지만 기자가 2000년 대학입학과 동시에 처음으로 만든 메일 계정이 다음과 야후코리아였으니 말이다. 방송국에서도 우편엽서를 받을 주소대신 대신 홈페이지 URL를 화면하단에 워터마크 마냥 찍어대기 시작한 그때 야후코리아는 국내 인터넷 문화를 선도했다.
1994년 미국 스탠퍼드대 대학원생 데이비드 필로와 제리 양이 개발한 야후는 포털의 선구자란 평가를 받았고 1997년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당시 많은 이가 야후코리아를 통해 인터넷 세상에 입문했다고 했을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한 해 먼저 서비스를 시작한 다음커뮤니케이션(다음)과 국내 검색 시장을 양분했다.
야후코리아는 인터넷 문화를 활성화한 것 뿐만 아니라 IT인력 양성소역할도 했다. 야후코리아에서 인터넷과 포털산업에 대한 노하우를 익힌 인력들이 NHN, 다음 등 포털 업체를 비롯한 인터넷산업 전반으로 퍼져나갔다. 현재 최휘영 NHN비즈니스플랫폼 대표이사, 김정우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대표이사, 허주환 다음 에듀엔터 본부장 등이 야후 코리아 출신이다.
1997년 등장한 야후코리아는 인터넷 문화를 꽃 피우는데 기폭제 역할을 했다.
공룡의 등장과 시작된 약세
마치 둘리 같은 귀여운 그린톤으로 무장한 네이버가 1999년 네이버컴으로 서비스를 시작 했을 때 야후코리아의 위상을 위협할 존재가 아니라 생각했다. 하지만 네이버는 한게임과 난립했던 포털 사이트를 인수·합병 하고 2002년 10월 지식인 서비스 오픈으로 대한민국 인터넷 역사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시장을 잠식해 나갔다. 귀여웠던 녹색 둘리가 거대한 공룡이 되어 시장을 호령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제일기획 광고연감에 따르면 2011년 온라인 광고매출 규모가 인쇄매체를 제치고 TV광고 다음으로 2위로 올라섰고 NHN이 단일 사업자로는 유일하게 약 1조 4천억 원을 기록했다. 단일 사업자 매출로 치면 NHN이 지상파 채널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셈이다. “온라인 광고시장 매출 보고서를 작성할 때 네이버 외 기타 등등으로 분류한다”라는 광고대행사 담당자들의 농담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닌 상황이다.
네이버가 이렇게 승승장구 하는 사이 야후코리아는 점점 잊혀갔다. 네이버와 다음이 점유율을 각각 70%, 20%로 올리며 시장을 잠식하는 사이 야후코리아는 점점 하락해 2012년에는 1%대 라는 굴욕적인 성적표를 받았다. 인터넷 초창기에 포털시장을 다음과 양분했던 야후코리아의 몰락을 바라보는 시선은 복합적이다. 네이버가 거의 독점하다시피하는 시장 환경과 내부적으론 혁신의지 부족에 있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특히 업계 관계자들은 고객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한 혁신부족과 만족했던 태도가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야후코리아를 버티게 한 자회사 오버추어코리아가 어쩌면 양날의 검이었는지도 모른다. 국내 검색광고의 틀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시장을 독점했던 오버추어코라이가 수익을 보전하는 구실을 하면서 내부적 혁신의지를 꺾은 게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든다. 오버추어코리아를 통해서 하던 검색광고를 네이버와 다음이 각각 2010년, 2013년 독자 진행을 선언해 오버추어코리아의 수익이 급감 하면서 야후코리아가 마지막 회생동력을 잃은 셈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부진을 거듭하다가 2012년엔 1%대 점유율 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킬러콘텐츠 부재로 허덕이다 결국 작별을 고하다
야후코리아 쇠락에는 킬러콘텐츠 부재도 한 자리 하고 있다. 네이버는 지식인과 블로그, 다음은 카페와 아고라, 네이트는 네이트온 등 각 포털마다 상징적인 콘텐츠를 갖고 있지만 야후코리아는 딱히 떠오르는것이 없다. 킬러콘텐츠 부재는 사이트를 찾는 유저가 줄어 트래픽량이 감소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물론 2000년 초반 어린이에게 안전한 인터넷 놀이터를 제공하는 취지로 시작한 야후꾸러기는 좋은 반응을 얻었던 대표 콘텐츠였다. 이후 주니어네이버, 다음의 키즈짱 같은 서비스를 만들게 하는 기폭제가 됐을 정도로 파급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 후 네이버와 다음이 검색과 커뮤니티를 강화하고 웹툰을 선보이는 등 다양한 서비스로 유저들의 요구를 반영할 때 야후코리아는 한 발 떨어져 있던 것이 사실이다.
야후꾸러기 이후 대중들의 뇌리에 각인될 만한 서비스가 ‘야후거기’정도로 손으로 꼽을 수준 이었으니 말이다. 야후거기 역시 네이버의 지도 서비스와 다음의 라이브뷰에 밀려 빠르게 잊혀갔다. 또한 메뉴판닷컴 같은 위치기반 맛집 정보제공 사이트가 유행을 타면서 야후거기 서비스는 급격하게 수요가 감소했다. 야후거기 맵데이 강남대로 미디어폴 키오스크에 공식 지도 서비스를 하는 등 자구책을 모색 했지만 상황 반전은 쉽지 않았다.
야후거기 맵 데이 등 다양한 방식으로 대표되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복잡한 의사결정, 본사의 판단 착오도 한몫
일각에서는 야후코리아의 의사결정 구조와 야후코리아의 권한을 지적하기도 한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아시아본부가 대만에 있는 특성상 네이버, 다음보다 의사결정 시간이 몇 배로 걸린다는 것. 특히 김정우( 현재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대표) 전 야후코리아 대표의 뒤를 이어 로즈 짜오 야후대만 부사장이 아시아 총괄자리를 차지하며 의사결정에 대한 어려움 더욱 심화 됐다는 것의 업계의 중론이다.
앞서 이야기한 킬러 콘텐츠부재는 결국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어도 아시아본부를 거쳐야하는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 때문에 국내시장 변화에 신속한 대처가 쉽지 않았던 것. 야후코리아 자체적으로 의사 결정권이 없어서 홍보나 마케팅 플랜을 실행하는데 길게는 한 달이 넘게 소요될 경우도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의성 있는 기발한 프로모션은 아예 시도조차 하기 힘들었을 것이란 게 업계 관계자의 이야기다.
한편 야후코리아는 야후꾸러기 매각을 추진하고 있었지만 사업철수로 없던 일이 돼버렸다. 한국 키즈 서비스 트래픽은 미국의 25배, 일본의 10배 규모로 시장성이 있는 콘텐츠다. 어떻게든 야후꾸러기를 살려보려 했지만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또 오버추어코리아는 다음과의 검색광고 대행 계약 연장이 무산된 이후에도 기술 이전 등 다각도의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등 자구책을 모색했지만 허사였다.
야후의 CEO 마리사 메이어는 “모바일을 강화하해야 하며 앞으로 다양한 변화가 있을것”이라며 강하게 구조조정 의지를 보이며 야후코리아 사업철수를 진행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사업철회를 두고 야후 본사의 판단착오를 지적한다. 국내 포털사이트 점유율 경쟁에서 뒤처진 조직을 정리하고 그간 야후코리아와 오버추어코리아에 쌓인 이익금을 취하는 것이 구조조정을 통해서 회생방안을 모색하는 것보다 실익이라 판단 한 것. 하지만 업계관계자들은 사업철수를 통해 소요된 비용이 1,025억 원으로 야후 측에서 예상한 300억 원을 훨씬 상회하는 금액이라 실익이 크지 않다고 예상하고 있다.
2012년 월별 검색엔진 유입율. 소폭 상승 곡선을 그리며 여러 자구책이 효과를 보는듯 했지만 야후 본사의 인내심은 거기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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