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선] ‘애플’은 브랜드이고, ‘삼성’은 브랜드가 아닌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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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선] ‘애플’은 브랜드이고, ‘삼성’은 브랜드가 아닌 이유
  • 이백현
  • 승인 2024.07.1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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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비싼 넷플릭스 머신’에 200만원을 쓸까?

[smartPC사랑=이백현 기자] 누군가가 애플이 가장 뛰어난 하드웨어 제조사라고 평한다면, 여기저기서 반론에 직면할 것이다. ‘아이폰이 가장 뛰어난 스마트폰’이라고 해도 결과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편 애플을 ‘세계에서 가장 브랜드 가치가 높은 기업’이라고 평한다면, 내심 그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반박하기란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가총액 1위를 오르내리는 기업이 최고의 하드웨어 제조사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 가치의 대부분은 ‘브랜드’라는 부분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애플의 브랜드 가치는 여타 하드웨어 제조사보다 높을까? 다시 말해서, ‘사과 로고가 박힌 물건’은 왜 비싸도 판매되는 걸까? 하드웨어 성능을 떼어 놓고 본, 애플의 브랜드 가치에 대해 알아보자.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전문업체 인터브랜드(Interbrand)의 '2023 글로벌 100대 브랜드(Best Global Brands)' 순위. 애플은 1위(5,026억 달러) 삼성전자는 5위(914억 달러)를 기록했다.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전문업체 인터브랜드(Interbrand)의 '2023 글로벌 100대 브랜드(Best Global Brands)' 순위. 애플은 1위(5,026억 달러) 삼성전자는 5위(914억 달러)를 기록했다.

 

 

애플은 불편하다

기자는 하드웨어 전문지에 근무하는 사람으로서, ‘3DMark’ 등의 벤치마크 프로그램과 친숙하다. ‘인텔 CPU는 안정성이 높다’거나,  ‘AMD 그래픽카드는 드라이버 안정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등의 가치 판단에 대해서, 여론에 휘둘리기보다 직접 검증해봐야 하는 위치이기도 하다.

이런 ‘하드웨어 전문 기자’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애플 기기는 불편하다. 기자가 스마트폰으로 ‘아이폰 15 프로’, 태블릿으로 ‘아이패드 프로 13(M4)’, 노트북으로 ‘맥북 에어(M3)’를 사용하고 있으니 확실하게 증언할 수 있다.

‘불편함’에 있어 애플의 악명은 이미 자자하다. NFC 개방이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애플 페이’를 제외하고는 NFC 결제 기능을 사용할 수 없으며 교통 카드도 물론 쓸 수 없다. 안드로이드에서는 흔하게 쓰는, 스마트폰 게임패드의 터치 매핑 기능이 차단되어 있다. 앱스토어 이외의 스토어에서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을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기자가 사용하고 있는 맥북 에어 13(M3)와 아이패드 프로 13(M4), 사진은 아이폰 15 프로로 촬영했다.
기자가 사용하고 있는 맥북 에어 13(M3)와 아이패드 프로 13(M4), 사진은 아이폰 15 프로로 촬영했다.

또 메모리(RAM)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다. 애플은 스마트폰에 저용량 메모리를 탑재하고, ‘모든 앱 종료’ 기능을 탑재하지 않는 이유로 ‘iOS의 효율적인 백그라운드 메모리 관리’, ‘앱 재시작에 소요되는 배터리 전력 감소’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최근 백그라운드 앱을 종료하지 않은 채 벤치마크 프로그램을 실행할 경우 성능 저하를 드러낸 바 있으며, iOS 18부터 지원되는 ‘애플 인텔리전스’의 사용 조건에 메모리 8GB(아이폰 15 프로 이상) 이상을 조건으로 명시해, 아이폰 15 기본 모델의 지원을 포기하는 등 메모리 정책에 대한 자가당착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태블릿이나 노트북에서 8GB 용량의 메모리로는 애플이 주장하는 ‘생산성 기기’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내기 어렵다. 기자가 사용하고 있는 워드 프로그램 ‘스크리브너’에서도 종종 메모리 부족으로 인한 멈춤 현상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이외에도 맥이 윈도우 PC에 비해 불편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사용자들이 이와 같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애플 기기를 구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용자는 어떤 가치를 느끼고 애플 기기를 구매하게 되는 것일까. 물론 대다수의 애플 기기 사용자들은 개인적인 몇 가지의 실용성을 논하겠지만, 실용성 이외의 ‘그 어떤 가치도 느끼지 않고’ 그 가격을 지불했다고는 자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성공적인 브랜드란?

애플의 브랜드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기 이전에, 우선 ‘브랜드’란 무엇인가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성이 있다. 흔히 알려진, 브랜드가 부리는 마법은 다음과 같다. 타사의 제품과 그리 차이 나지 않는 핸드백에, 어느 한 회사의 로고가 삽입되는 것만으로도 갑자기 가치가 수 배, 심지어 수십 배가 뛴다. 컬래버레이션 제품이나 한정판 같은 것을 내놓으면, 엄청난 프리미엄이 붙어 수 배의 가격에 거래된다. 이와 같은 사례는 보통 특정 브랜드의 소비자들을 멸시하기 위해 인용된다. 제품 로고에 휘둘린 채, 제품 본연의 가치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고 비판받는 것이다.

심지어 흰색 티셔츠도 ‘로고’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이를 다룬 컨텐츠가 만들어질 정도다.
심지어 흰색 티셔츠도 ‘로고’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이를 다룬 콘텐츠가 만들어질 정도다.

한편 브랜드의 입장에서 이와 같은 현상은 ‘당연히 일으켜야 할 것’으로 간주된다. ‘로고의 가치’를 소비자에게 납득시키지 못하는 브랜드는 브랜드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 제대로 기능하기 시작한 브랜드라면, 로고 하나만으로도 어떤 인상을 주어야 한다. 에르메스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귀족적인’ 인상이나, VOLVO가 가진 ‘안전’에 대한 인상 등이 그것이다.

에르메스는 마차의 마구 용품을 제작하면서 시작된 브랜드로, ‘귀족적’인 이미지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다.
에르메스는 마차의 마구 용품을 제작하면서 시작된 브랜드로, ‘귀족적’인 이미지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인상은 제품의 실용성과 가치를 소비자들에게 이해시키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할 필요성을 현저히 줄여준다. 소비자 또한 바로 그 이미지에 가치를 느끼고 제품을 구매한다. 이는 특히 ‘실용성을 따지는 데 소비하는 시간의 가치’가 큰 이들에게 작용하는 기준이다. 대기업의 CEO가 개인용 데스크톱의 실용성을 일일이 따져가며 하이엔드 조립식 PC를 구성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적어도 본인이 하드웨어 마니아가 아니라는 전제 하에서는 그렇다.

한편 하드웨어 마니아라고 하더라도 로고에 휘둘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최근 인텔의 맞은 여러가지 악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외계인을 고문해서 프로세서를 생산하는 기술 기업’이란 이미지를 추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회사가 오랜 기간 쌓아온 이미지들은 집약·누적되어 ‘로고’의 가치로 이어진다. 심지어 나중에는 제품의 성능이나 실용성에 관계없이 특정 기업에 대한 애착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로고의 가치’를 구축하기 위해서, 기업들은 어떤 노력을 할까?

 

세계적인 브랜드는 어떻게 로고의 가치를 만드는가

오늘날 세계적인 브랜드들은 더 이상 제품의 실용성을 광고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가장 핵심적으로 표현하고 싶어하는 것의 핵심은 ‘우리 브랜드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다.

나이키는 자사 운동화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대신 세계적인 스포츠 선수들을 내세우며, 메르세데스 벤츠의 광고에는 정장 입은 할리우드 스타들, 그리고 호텔과 같은 이미지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하드웨어 회사인 레이저(RAZER)조차 페이커 이상혁 선수를 모델로 자사 제품의 이미지를 형상화하곤 한다.

레이저는 데스에더 V3 프로 ‘페이커 에디션’을 출시할 정도다. 실재 페이커 선수는 데스에더 계열 제품군을 주력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레이저는 데스에더 V3 프로 ‘페이커 에디션’을 출시할 정도다. 실제 페이커 선수는 데스에더 계열 제품군을 주력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광고의 의도는 명확하다. 자사 브랜드 제품을 입고, 타고, 신는 사람들에 대한 ‘환상’을 불어넣는 것이다. 그리고 그 환상이 실제와 얼마나 근접한가는 브랜드의 성공·실패를 가르는 핵심이다. 타깃 사용자들(이를테면 세계적인 스포츠 선수, 프로게이머, 할리우드 스타)가 일단 브랜드를 선택하고 계속 사용하면, 그들을 닮고 싶어 하는 평범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평범한 사람들’은 항상 브랜드에게 이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명품 브랜드의 경우 이런 ‘평범한 사람들’ 잠재적인 위협이 되기도 한다.

 

명품 브랜드를 위협하는 ‘평범한 사람들’

브랜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회사들은 슬슬 ‘고객의 질’을 관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에르메스는 최근 까다로운 고객 관리로 화제가 된 바 있는데, 특정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수 개월 간 에르메스 매장 직원과 친분을 쌓고, 선물까지 해가며 ‘품위있는 상류층’임을 인정받아야 한다.

이처럼 에르메스로부터 ‘고객’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더라도 에르메스 매장에서 물건을 구매할 수 없다. 이는 일견 고객에 대한 갑질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 이상 가격만으로 ‘고객의 질’을 관리하기 어려워진 브랜드가 내린 극약 처방에 가깝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에르메스 VIP 자격을 갖추기 위해 소비자들이 수천만 원을 쓰는 현상을 ‘미친 경제학’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에르메스 VIP 자격을 갖추기 위해 소비자들이 수천만원을 쓰는 현상을 ‘미친 경제학’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명품 브랜드는 왜 고객의 질을 관리해야 하는가? 그것 또한 오늘날 브랜드의 가치가 그 제품을 ‘누가 사용하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구찌와 같은 브랜드가 아무리 고급 이미지를 내세운들, 그 이미지는 ‘무리하게 명품을 사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위협을 받는다.

당장 제품이 많이 팔리면 좋을 것 같지만, 보다 ‘평범한’ 사람들이 그 브랜드를 사용할수록 그 가치는 희석된다. 오늘날 평범한 사람들은 명품을 구매하면서, ‘브랜드의 타깃 사용자층’의 이미지, 예컨데 ‘상류층’의 이미지를 어떻게든 입으려고 발버둥치기 때문이다. 아무리 브랜드들이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들여가며 사용자층에 대한 환상을 불어넣더라도, SNS에서는 ‘누가 사용하는가’의 진실이 금방 드러난다.

‘평범한 사람들이 무리하게 구매한 명품’이란 이미지가 SNS에서 범람하면, 브랜드의 원래 타깃이었던 사용자층은 해당 브랜드를 이탈해 버린다. 이런 흐름이 장기간 이어지면 결국 브랜드 가치, 즉 ‘로고의 가치’는 저하된다. 이는 명품 브랜드들이 가장 위협적으로 느끼는 요소로, 타깃 사용자층의 반발을 부르면서까지 가격을 높이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반대로 ‘케이스티파이’처럼 연예인과 인플루언서들에게 자사 케이스를 제공함으로써 SNS를 통한 ‘사용자층의 이미지’ 구축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케이스티파이 공식 홈페이지 캡처)
반대로 ‘케이스티파이’처럼 연예인과 인플루언서들에게 자사 케이스를 제공함으로써 SNS를 통한 ‘사용자층의 이미지’ 구축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케이스티파이 공식 홈페이지 캡처)

소위 ‘명품’을 만든다고 알려진 브랜드들이 자사의 재고를 저렴하게 판매하기보다 차라리 불태워버리기를 선택하는 이유도 결국 로고의 이미지 때문이다. 브랜드들은 재고를 불태움으로써 입는 금전적 피해와 친환경 이미지의 손실보다 ‘로고’로 형상화되어 있는 자사 제품의 이미지, 그리고 사용자층에 대한 환상이 ‘2차 아울렛 할인 매대’에서 더럽혀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패키징도 없이 할인 판매되는 명품은 명백히 ‘로고의 환상’을 위협한다. ‘평범한 사람들’은 할인 매장을 기웃거리며 본래 비쌌을 명품을 싸게 구했다는 데 만족할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경험이 반복되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평범할 사람들의 SNS에서 같은 제품을 목격하고 나면, 본래 되기를 원했던 ‘상류층’들은 할인 매장에서 구할 수 있는 명품을 더 이상 비싼 가격에 구매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에 도달하기 마련이다.

명품 브랜드들의 재고 소각 행위는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명품 브랜드들의 재고 소각 행위는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애플은 어떻게 ‘로고의 가치’를 보존하는가

그렇다면 ‘세계에서 가장 브랜드 가치가 높은 기업’, 애플은 어떻게 브랜드 가치를 보존하고 있을까? 그들의 로고는 어떤 인상을 주며, 사용자층을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사람으로 형상화하고 있을까? 이 분야에서 애플이 선택한 ‘사용자층’은 영리한 부분이 있다.

오늘날 애플이 환상을 심어주려는 사용자층에 대한 이미지는 ‘상류층’과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애플이 사용자층에게 주고 싶어 하는 이미지는 ‘크리에이티브’, 그리고 ‘웰니스’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법한데, 맥킨지는 ‘웰니스(wellness)’에 해당하는 범주를 건강, 수면, 영양, 피트니스, 외모, 그리고 마음챙김 등으로 언급하고 있다. 즉 현대 사회가 ‘더 좋은 삶’에 필요하다고 믿는 대다수의 개념을 포괄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리서치 업체 맥킨지는 웰니스에 포함된 범주를 건강, 피트니스, 수면, 영양, 외모, 마음챙김으로 정의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리서치 업체 맥킨지는 웰니스에 포함된 범주를 건강, 피트니스, 수면, 영양, 외모, 마음챙김으로 정의하고 있다.

즉 애플이 ‘사과 로고’에 심으려고 하는 이미지는 ‘대중성’과 ‘프리미엄’을 동시에 공략할 수 있을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것은 ‘현대의 예술가들(크리에이터)’과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현대인의 지향점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들은 빈자들에게 사치스럽다고 공격받지 않으며, 부유층 또는 지식층에게 함부로 멸시되지도 않는다.

 

애플이 브랜드로서 직면한 도전과, 그에 맞서는 처방

물론 다른 브랜드들과 같이, 애플도 ‘주 사용자층의 이미지를 입길 희망하는 사람들’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사과 로고’에만 홀려서 아이폰, 또는 아이패드, 맥을 구매하는 사용자층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의 애플 기기에 대한 순박한 선망과 찬양은 금방 반발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또한 무리해서 애플 기기를 구매한 뒤 자랑하는 이들에게 쏟아지는 곱지 않은 시선은, 애플의 ‘타깃 사용자층’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영상편집 용도로 맥을 구매하거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아이패드를 구매하는 사용자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애플을 사용하는 이유를 하나 하나 해명해야 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용자들은 애플 기기를 ‘패션 아이템’으로 구매하는 사람들과 달라 보이기 위해 애쓰고, 이는 대개 애플의 불편함(부족한 램 용량 등)을 주위에 역설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기자가 기사 초반, ‘애플은 불편하다’는 소제목에 많은 분량을 할애한 이유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명품 브랜드의 경우, ‘평범한 사람들이 무리해서 사 입는 브랜드’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하면 기존 사용자층의 이탈을 불러온다. 그렇다면 애플의 타깃 사용자층은, 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사과 로고에 홀려’ 애플을 구매하는 데도 이탈하지 않을까. 에르메스가 드러내 놓고 ‘고객의 질’을 관리하기 시작하고, 여타 ‘명품’ 브랜드가 가격 상승으로써 사용자층 이탈 위기에 대응하고 있는 와중에, 애플은 어떤 처방을 내리고 있는 걸까.

여기에 애플 기기의 폐쇄성이나, 락인(Lock-in) 효과를 언급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하드웨어와 결부된 설명일 것이다. ‘파이널 컷’과 같은 영상 편집 소프트웨어가 필요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애플 기기를 구매하는 것도 정확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애플의 마케팅 역량을 주목하려면, 결국 애플의 ‘생태계 내 마케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용자들은 왜 애플 기기에 만족할까
‘생태계 내 마케팅’에 사용되는 소프트웨어들

애플 기기를 만족하며 사용하는 사람에게, ‘왜 애플 기기가 만족스러운가’를 물어보면 다소 궁색한 답변을 늘어놓을 것이다. 물론 맥북은 배터리가 오래가고, 아이패드는 화질이 좋다. 아이폰의 영상 촬영 기능은 뛰어나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은 사용자들이 반드시 애플 생태계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지 못한다. 사용자들의 대답이 궁색한 것은, 애플이 사용자들로 하여금 ‘구체적인 실용성과 관계없는 감상’을 가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앞서 세계적인 기업들을 통해 살펴본 것처럼, 사람들은 브랜드 제품을 구매하며 ‘스포츠 선수, 할리우드 스타, 프로게이머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원한다. 마케팅을 통해 이러한 느낌을 주어 판매하는 데까지 성공했다면, 다음 과제는 구매자로 하여금 그 ‘느낌’을 유지하는 것이다. 성공적인 브랜드는 이미 제품을 구매한 사용자들에게도 ‘로고가 가진 환상’을 유지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애플이 사용자들에게 주는 느낌은 무엇이고, 어떻게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을까? 앞서 애플이 사용자층에게 주고자 하는 이미지를 ‘크리에이티브’, 그리고 ‘웰니스’라고 정리한 바 있었다.

이중 ‘크리에이티브’ 부분을 눈여겨 보자. 이 분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애플의 노력은 타사 앱과의 끈끈한 협력이다. ‘굿노트(손글씨 다이어리 앱)’, ‘프로크리에이트(2D 그래픽 디자인 앱)’, ‘어도비 프레스코(마찬가지로 2D 그래픽 디자인 앱)’ 등으로 대표되는 생산성 애플리케이션들이 이에 해당한다.

기자는 최근 출시된 ‘아이패드 에어 13’과 관련해 애플 본사의 마케팅 담당자에게 대면 브리핑을 받은 경험이 있는데, 이때 담당자는 ‘애플 펜슬 프로’의 새롭게 추가된 기능(배럴 롤)을 시연하기 위해 해당 애플리케이션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목격했다.

아이패드를 ‘크리에이터의 도구’로 만드는 데 공헌하고 있는 프로크리에이트.
아이패드를 ‘크리에이터의 도구’로 만드는 데 공헌하고 있는 프로크리에이트.

이것은 분명한 메시지로 해석된다. 출시 이전부터 새로운 기능을 지원하기 위해 ‘타사 앱’과 협력하고, 공식 브리핑 자리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에서 도출해낼 수 있는 결론이다. 바로 애플이 ‘크리에이터들의 도구’라는 이미지를 아이패드에 부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애플 생태계 외부에선 미디어 광고—예술도구를 프레스로 찍어 누른 뒤 아이패드로 변하는 장면에서 논란이 되었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생태계 내 노력(마케팅)은 바로 소프트웨어 협력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애플은 각종 예술도구를 프레스로 눌러버리는 광고 연출으로 논란이 된 바 있다.
애플은 각종 예술도구를 프레스로 눌러버리는 광고 연출로 논란된 바 있다.

이런 생태계 내 마케팅이 일으키는 효과는 다음과 같다. 아이패드 사용자는 본인에게 유용하게 사용하든 아니든, 누군가는 ‘프로크리에이트’를 통해 멋진 2D 그래픽 아트를 그릴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이런 인지는 막연한 기대와 선망을 일으킨다. 즉 ‘그들(크리에이터)이 사용하는 도구가 내 손에 있으면, 자신도 그들을 닮을 수 있지 않을까’로 표현할 수 있는 감상을 암시적으로 갖게 된다.

비싼 비용을 지불해 아이패드를 구매한 뒤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더라도 애플을 원망하게 되는 일은 없다. 도구를 온전히 활용하지 못한 사용자의 탓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온전히 아이패드를 활용하는 사용자들은, 그 실용성 이상으로 은연 중 ‘애플 기기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에 만족감을 느낀다.

즉 애플이 소프트웨어 지원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크리에이터’ 이미지는 실제로도 마케팅적 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다. 사용자들이 흔히 ‘아이패드 병’이라고 부르는 현상을 의도적으로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애플이 부여하고자 하는 ‘로고의 환상’ 중 하나인 ‘웰니스’로 넘어가보자. 그러면 곧장 애플의 마케팅 역량이 얼마나 소프트웨어에 깊이 스며있는지 알 수 있다. 앞서 ‘웰니스’에 포함된 개념이 건강, 수면, 영양, 피트니스, 그리고 마음챙김이라고 언급한 바 있었다. 아이폰 사용자라면 이러한 개념에 대응하는 기본 앱들(건강, 피트니스 등) 금방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최근에 출시된 기본 앱이 ‘일기’라는 점 또한 의미심장하다.

애플이 iOS 17.2와 함께 선보인 ‘일기(Journal)’ 앱
애플이 iOS 17.2와 함께 선보인 ‘일기(Journal)’ 앱

애플이 기본 앱으로 ‘일기’를 출시했을 때 고개를 갸웃거린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기기 제조사에서 최신 업데이트로 ‘일기’를 출시한다는 시도를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애플리케이션(건강, 피트니스, 일기)은 사용자들에게, ‘더 좋은 삶(웰니스)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끊임없이 부추긴다. 그럼으로써 생태계 내 사용자들이 ‘사과 로고’에 대한 환상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사용자들이 그 앱들을 다 활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렇다.

이러한 인지는 사용자가 ‘허영심에 쓸데없이 비싼 기기를 사용한다’는 비판에 직면했을 때, ‘애플을 제대로 쓰지 않는 사람은 모른다’는 식의 명분을 만들어준다. 이러한 내면의 명분은 사용자가 계속 생태계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하고, 생태계 외부의 비판적인 시각에도 회의감이 들지 않도록 한다.

 

‘삼성’이 브랜드가 아닌 이유

애플이 이러한 노력을 해왔던 것과 달리, 삼성은 주도적으로 즉 사용자층에 관한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있다. 브랜드가 아니라고까지 표현한 것은 ‘로고의 환상’에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대중이 ‘삼성’이라는 이름을 마주할 때 느끼는 이미지는 거대 재벌의 이미지다. 삼성생명·삼성물산·삼성증권·삼성화재라는 이름을 모두 접하는 사람들에게 일관적인 로고의 이미지를 심어주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심지어 삼성전자 혼자서 타원형이 빠진 로고를 사용하기까지 한다.

일반적으로 삼성그룹은 파란색 타원이 로고를 사용하지만, 삼성전자는 글자만 있는 로고(주로 검은색)를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삼성그룹은 파란색 타원이 로고를 사용하지만, 삼성전자는 글자만 있는 로고(주로 검은색)를 사용한다.

삼성이 브랜드명이 아닌 이유는 ‘갤럭시’라는 이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애플의 경쟁 제품을 출시할 때 삼성이 내세우는 이름은 항상 ‘갤럭시’다. 애플도 아이폰의 ‘i’가 하나의 브랜드명이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Mac과 애플워치, 그리고 에어팟에는 이러한 네이밍을 찾아볼 수 없는 반면, 애플에 대응되는 삼성전자의 주요 제품에는 반드시 ‘갤럭시’가 들어간다는 점을 고려하면 삼성전자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스마트기기 분야에서는, ‘삼성’이란 이름이 단독으로 ‘로고의 환상’을 부여해주지 못한다. 그보다 더한 문제는 삼성이 ‘삼성 갤럭시’라는 이름에 어떤 이미지를 담고 싶은지, 무슨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지, 소비자를 ‘어떤 사람’으로 형상화하고 싶은지 전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용자들은 브랜드 제품을 구매하며 ‘스포츠 선수, 할리우드 스타, 프로게이머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원한다. 성공적인 브랜드는, 로고만 보고도 그러한 느낌을 떠올리게끔 만들어야 한다. 물론 ‘삼성전자’의 로고에서는 세계적인 첨단 기술기업의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그 이미지는 이제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담백한 사실에 불과하다. 이는 삼성전자가 주도적으로, 의도적으로 구축해낸 마케팅적 이미지가 아니다.

단적으로 비판하자면 ‘삼성 갤럭시의 사용자층을 어떤 사람들로 형상화할 것인지’, 삼성에게서는 그러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이는 애플이 무리한 미디어 광고를 해가며까지 ‘크리에이터’라는 이미지를 주려고 안달이 난 것과는 대조되는 행보다.

 

마케팅의 괴물 애플

애플은 전혀 다른 종류의 기기를 팔면서도 일관된 이미지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브랜드다. 지금에서야 데스크톱, 랩톱, 스마트폰, 태블릿, 이어폰, 헤드폰, 워치가 모두 스마트기기로 분류되지만, 이러한 흐름을 주도한 것이 바로 애플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이폰이 처음 개발될 당시 ‘애플이 폰을 만든다고?’라고 비웃었던 목소리가 있었던 것을 기억해보자.

애플 스토어는 물건을 파는 공간이라기보다, 그 자체로 마케팅적 의미를 지닌다.
애플 스토어는 물건을 파는 공간이라기보다, 그 자체로 마케팅적 의미를 지닌다.

애플이 무서운 점은, 회사의 방향성과 제품개발부터 생산, 판매, 홍보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에 회사의 마케팅 역량이 스며 있기 때문이다. 애플 스토어에 방문했을 때, 소비자들은 진열된 애플 기기의 ‘번쩍번쩍함’에 자연스럽게 홀리게 된다. 애플 프리미엄 리셀러를 자처하는 ‘프리스비’나 ‘에이샵’ 등과 비교해 봐도 매장 진열의 수준 격차가 두드러진다.

또한 삼성 매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진열 기기 할인 판매’와 같은 행위를 애플은 절대 하지 않는다. 이것은 명품 브랜드들이 ‘2차 아울렛 할인 매대’에 자사 제품을 올리지 않으려는 이유를 애플이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사람들이 200만원 ‘넷플릭스 머신’을 사는 이유

기자는 199만 9천원의 아이패드 프로 13 M4, 14만 9천원의 스마트 폴리오 케이스, 그리고 19만 9천원의 애플 펜슬 프로를 구매한 한 사람으로서, 어떤 용도로 샀냐는 질문에 늘 같은 말로 대답한다. 바로 ‘사고 싶어서’다. 거기에는 수많은 실용적인 이유를 붙일 수 있지만, 가격에 합당한 실용성이냐고 물으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물론 세상 어딘가에는 ‘아이패드 프로 M4’를 온전히 사용해내는 크리에이터들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애플이 ‘제발 우리 제품 좀 써 주세요’라고 외치는 사람들일 것이며, 기자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크리에이터의 도구’라는 동경으로 200만원을 지불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치며: 거꾸로 가는 애플

한편 애플은 최근 마케팅 전략에서 방향성 변화를 보이기도 했다. 앞서 ‘세계적인 브랜드들은 실용성을 광고하지 않는다’라고 했지만, 애플은 최근 미디어를 통해 애플 실리콘(M4 등)의 성능을 강조하기 시작했으며, 유튜브에는 ‘맥북의 오래가는 배터리’라는 영상 광고를 집행하기까지 했다. 그동안 명품 브랜드처럼 ‘로고의 가치’를 전달하려 했던 애플이, 왜 최근에는 제품의 실용성을 강조하기 시작했을까.

특정 성능을 노골적으로 광고하는 애플의 모습이 낯설다.
특정 성능을 노골적으로 광고하는 애플의 모습이 낯설다.

이는 애플이 더 이상 미디어를 통해 ‘로고의 가치’를 설득시킬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원인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생태계 내 마케팅을 통해, 소프트웨어를 통해 ‘크리에이티브’, ‘웰니스’라는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으므로, 생태계 외부적으로는 오히려 실용성을 강조하기로 결정한 것은 아닐까?

외부에서 애플 기기의 실용성을 (진위 여부와 관계없이)납득하게 된다면, 애플 사용자들은 그들에 대한 미묘한 시선과, 사용자를 ‘로고에 홀린 바보’로 만드려는 커뮤니티의 논쟁에서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해석은 지나치게 애플의 마케팅 역량을 과대평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법하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 바로 애플의 무서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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