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정감사에서 다시 한 번 게임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번 표적은 밸브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스팀 플랫폼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박주선 의원은 스팀에서 서비스하는 게임 중 공식 한글화 된 게임은 총 138개이지만, 이중에서 국내 등급분류를 받은 게임은 60개에 불과하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박주선 의원은 “한국인을 대상으로 공식 한글화된 게임 서비스의 경우 관련법이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으면, 이는 국내기업에 대한 차별로 작용하게 된다”며,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주선 의원의 발언이 알려지면서 국내 스팀 이용자들은 강한 반발을 나타냈고, 이로 인해 국내에서 스팀을 이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스팀은 어떤 서비스?
스팀은 일종의 ESD(Electronic Software Distribution), 우리말로 전자 소프트웨어 유통망으로 주로 게임을 유통하고 서비스하는 플랫폼이다. 과거에 게임은 패키지 형태(주1)로 유통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인터넷 속도가 발달하고, 사람들이 보다 편리한 방법을 찾기 시작하면서 소프트웨어를 온라인상에서 바로 판매하는 서비스가 주목을 받게 됐고, ESD가 점차 시장을 확대해 나가기 시작했다.
스팀은 2003년 처음 서비스 됐는데, 당초는 밸브에서 직접 개발한 게임들을 서비스하기 위한 자체 통합 플랫폼이었다. 이후 인디게임을 시작으로 외부 제작사에서 만든 게임들을 하나 둘 서비스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ESD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스팀은 3,700개 이상의 게임을 서비스하고 있으며, 전 세계에 1억 명의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고, 동시 접속자만 해도 800만 명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게임 유통 및 서비스 플랫폼으로 자리매김 했다. 스팀의 성공은 많은 비슷한 류의 서비스들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그 어떤 플랫폼도 스팀의 아성을 뛰어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국내에서는 정식으로 서비스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해외 결제가 되는 카드가 없으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 이 때문에 해외 결제가 불가능한 사람들을 위한 대행 서비스가 생겨나기도 했다. 올 초 통계 자료를 보면 국내에서 발생한 스팀의 트래픽 양은 전체의 1.7% 였다고 하는데, 이 수치는 중국과 러시아를 넘어서는, 아시아 국가 중 1위 기록이었다고 한다.
국내에서 스팀 서비스가 이처럼 흥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편의성에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국내 게임 시장의 경우 온라인게임과 모바일게임이 시장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고, 패키지 게임은 거의 죽었다고 볼 수 있는 수준이다. 시장 상황이 안 좋다 보니 국내에서 직접 패키지 게임을 구하는 것은 상당한 노고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스팀이 등장하면서 정말 간단하게 클릭 몇 번이면 게임을 구입할 수 있게 됐으니, 국내 이용자들 입장에서는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가 된 셈이다. 이런 스팀 서비스가 국정 감사에서 지적을 받았으니, 이용자들이 우려를 나타내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주1: 중국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외국의 경우 온라인게임도 패키지 형태로 판매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 밸브의 창업자 중 한 명인 게이브 뉴웰. 무자비하게 자행되는 스팀의 할인 공세 덕분에 국내에서는 ‘연쇄할인마’ 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스팀, 정말 불법인가?
박주선 의원실의 주장을 먼저 살펴보자. 박주선 의원실측은 ‘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 21조에 명시된 “게임물을 유통시키거나 이용에 제공하게 할 목적으로 게임물을 제작 또는 배급하고자 하는 자는 당해 게임물을 제작 또는 배급하기 전에 위원회로부터 당해 게임물의 내용에 관하여 등급분류를 받아야 한다.” 는 조항을 근거로 삼고 있는데, 이는 스팀으로 서비스 되는 게임들이 국내에 유통을 목적으로 할 때나 적용되는 법률이다. 박주선 의원 측은 스팀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한국어 지원 게임들은 명백히 국내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판매를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법에 따라 등급 분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대 측 주장의 핵심은 단순히 한국어 서비스를 한다고 해서, 국내 유통으로 보는 것은 관련 법률을 확대 해석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최근에 이슈가 된 텔레그램의 사례를 살펴보자. 텔레그램은 독일에 서버를 둔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이지만, 최근 카카오톡의 사이버검열 논란으로 국내 이용자가 급증하자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렇다면 과연 텔레그램을 한국에 서버스 되는 메신저로 분류하고 국내 법을 적용 시킬 수 있을까? 스팀 역시 이와 다를 바 없다. 단순히 한국 사용자들이 늘어나면서 한국어 서비스를 했을 뿐이지, 국내에 정식 유통되는 서비스가 아닌 것이다.
또한, 박주선 의원 측은 특정 게임이 다른 국가에서는 제대로 등급 분류를 받았지만 국내에서는 받지 않고 있다며, 스팀이 국가별로 차별을 두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이 역시 사실 관계를 잘못 이해한 데에서 발생한 오해라는 것이 반대 측의 반박이다. 박주선 의원 측이 예시로 든 게임의 경우 등급 분류를 받은 국가에서는 패키지 형태로도 유통을 한 게임이며, 실제 등급 분류도 패키지 유통사에서 받은 것이다. 즉, 스팀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안인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팀이 또 완전히 국내법에서 자유로운가 하면 그렇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일단, 스팀에서 게임을 결제하고 다운로드 받는 것은 넓은 범위에서 보자면 해외 쇼핑몰에서 제품을 구매해 국내에 반입하는 것과 동일한 행위다. 해외에서 구매한 물건을 국내에 들여올 때는 세관이라는 곳을 거치게 되는데, 이때 국내에서 금지하고 있는 물품들은 반입이 거부된다. 즉, 해외에서 직접 구매한 게임이라도 국내에서 허가 되지 않은 게임의 경우 반입이 금지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 국정감사에서 스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박주선 의원
스팀, 과연 차단될 것인가?
어쨌든 현 상황에서 이용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문제는 과연 스팀 서비스가 국내에서 차단될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박주선 의원 측이 이 문제를 제기한 이후 이용자들과 업계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거세게 일어나자 박주선 의원실 관계자는, 무조건 해외 서비스를 차단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국내 서비스와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는 의미라는 점을 강조했다. 현재 국내의 스팀 이용자는 7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국내에서 직접 게임을 유통하는 사업자들도 대부분 스팀 코드를 제공하고 있다. 만약 정말로 스팀 서비스가 국내에서 차단된다면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 국내 최대의 포털사이트 네이버 역시 스팀키가 포함된 게임을 유통하고 있다.
사실 스팀의 심의 문제는 이전에도 한 번 지적을 받았던 적이 있었지만, 유야무야 지금까지 아무런 조치도 없이 시간만 보내 왔다. 그러나 이번 국정감사에서 공론화 된 이상 어떤 식으로든 스팀 문제에 대한 결론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최종적인 결정은 관련 기관인 게임물등급위원회(이하 게임위)에서 해야 할 일이겠지만, 극단적인 결론을 내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행여 게임위와 밸브 사이에서 합의점을 이끌어 내지 못한
다고 해도 스팀의 전면적인 차단보다는 국내에서 심의를 받지 않은 게임에 한정된 부분 차단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다.
다고 해도 스팀의 전면적인 차단보다는 국내에서 심의를 받지 않은 게임에 한정된 부분 차단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다.
얼마 전 국정감사에 참고인 자격으로 참석한 다음카카오의 이석우 공동대표는 “아날로그 시대에 만들어진 법은 무선통신 시대에 적합하지 않다”는 의미의 발언을 남겼다. 스팀 문제도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번 기회에 업계의 여론을 적극적으로 수렴하고, 관련 법률을 재정비해 디지털 콘텐츠 유통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수립하는 것도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민감한 사안이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지는 미지수지만, 부디 국내 이용자들이 손해 보지 않는 방향으로 합의가 이루어지길 바랄 뿐이다.
▲ 수십에서 수백만 원어치의 게임을 결제한 국내 이용자도 적지 않다.이들이 피해를 받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smartPC사랑 | 석주원 기자 juwon@ilovep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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